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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위안부 판결과 진화하는 ‘주권면제’ 국제법

[칼럼] 위안부 판결과 진화하는 ‘주권면제’ 국제법

기사승인 2021. 01. 1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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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실 전 모로코대사·미국 변호사
박동실 (전북대 초빙교수, 전 주모로코대사)
박동실 전 모로코대사·미국 변호사
지난주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이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이르고 다녔다고 한다. 한국 법원이 지난 8일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고 한 판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외상이 다른 나라 정부에 제3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상식 밖의 도발적인 언행이다. 그 지적 자체가 일본이 주권적 행위로 일본군 위안소를 운영했다고 자인하는 셈이 되는데 과연 그랬을까.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일본군 위안소의 운영은 반인도적 범죄행위로서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일본 정부는 “주권면제를 부인한 판결로 국제법 위반”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주권면제’란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에 복종하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는 법리다. 단지 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는 이유로 면제된다. ‘주권적 행위’란 국가의 권력적 행위를 말한다. 그렇지 않은 행위는 국가의 상거래와 고용계약, 불법행위 등 사법(私法)적 성격의 행위다.

‘강행규범’은 ‘반인도적 범죄 금지의무’와 같이 국제공동체의 근본 가치로서 국가의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최상위 규범을 말한다. 노예제 금지 의무와 제노사이드(집단살해) 금지의무도 이에 해당한다.

한국 법원이 위안부 제도를 주권적 행위라고 인정하면서도 강행규범 위반을 이유로 주권면제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강행규범 위반에 대한 주권면제가 도전받고 있는 국제적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즉 강행규범 위반에 주권면제를 인정하는 국제법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새로운 규범이 태동해 다투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기존 규범과 충돌한 것이다. 주권면제 국제법은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국가의 주권평등 원칙에서 비롯된 주권면제는 개별국가의 법원 판결을 통해 관습국제법으로 형성됐다. 처음에는 국가의 행위라는 이유만으로 예외 없이 다른 나라의 재판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됐지만 나중에 국가의 주권적 행위에만 주권면제를 적용하는 새로운 규범이 형성됐다.

19세기 말 각 나라가 국영기업을 통해 무역에 나서면서 상업적 행위에 주권면제를 적용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고, 이들과 거래하는 민간인이 부당한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1차대전 이후에 주권면제 적용의 예외가 확립됐다. 상거래 외에 고용계약과 불법행위의 신체·재산 피해 등이 예외로 인정된다. 이러한 행위로 인한 국가의 배상책임이 인정되더라도 국가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은 실질적으로 봉쇄돼 있다.

더 나아가 이제는 주권적 행위일지라도 강행규범 위반에는 주권면제를 적용하지 않으려는 또 다른 예외 규범이 태동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또는 강제노역 등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여러 유럽 국가에서 제기됐다.

대부분 주권면제 원칙에 따라 기각됐지만 이탈리아 대법원은 ‘페리니’ 강제노역 사건에서 강행규범 위반을 들어 주권면제를 부인했다. 독일의 제소로 국제사법재판소는 2012년 판결에서 독일의 주권면제를 인정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에 따른 법을 만들었지만 헌법재판소는 2014년 위헌 판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강행규범 위반에 주권면제를 부인하는 또 다른 국가 실행이다.

국제공동체는 이제 반인도적 범죄행위와 같은 강행규범을 위반한 국가원수와 군 지휘관 등 국가기관으로서의 개인을 국제형사재판소를 통해 처벌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보호에 진전을 이뤘다. 국가 주권의 제약 추세, 그리고 인류가 성취한 인권·정의의 가치에 비춰 강행규범 위반에 대한 주권면제 적용은 계속 도전받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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