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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빈 칼럼] 재정건전성과 기축통화국 미신

[양영빈 칼럼] 재정건전성과 기축통화국 미신

기사승인 2021. 01. 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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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의 단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이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매우 지배적인 상황이다. 재난기본소득, 또는 국가의 명령때문에 영업을 못하는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기재부와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재정건전성을 얘기하면서 미적거린다. 재정건전성을 나라 곳간에 비유하면서 자못 비장함을 풍긴 채 곳간을 책임지는 최후의 곳간지기를 자처하기도 한다.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레퍼토리는 한결같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재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라거나 “지금의 과다한 재정지출은 미래세대의 부담이다”라는 것이다.

◇ 재정건전성 지표의 허구성

먼저 경제학에는 정해진 재정건전성 기준이 없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100%면 위험하고 50%면 안전하다는 식의 모두가 인정하는 기준이 되는 수치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2025년까지 기재부가 생각하는 60%는 기재부의 예상과 희망에 근거한 것이지 그 어떤 경제학적 근거가 없다. 언론에서 자극적인 기사제목을 뽑을 때 쓰는 “단군이래 최대 전력 소비”, “단군이래 최대 부채” 등의 상투적인 표현은 절대적인 수치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공포감을 조성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양영빈
양영빈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제공=델타익스체인지.
경제는 성장하기 때문에 전력소비나 부채 역시 같이 성장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성장하지 않으면 그 경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재정건전성을 구할 때 분자인 국가채무는 저량(스톡) 개념이고 분모인 GDP는 유량(플로우) 개념이다. 국가채무는 대한민국이 건국된 후 현재까지 국가의 순채무의 총합이고, GDP는 매년 새로 생산해내는 최종 부가가치의 총합이다. 이런 관점에서 재정건전성 지표를 본다면 그 비율이 100%가 되는 200%가 되든 별로 큰 의미가 없어 보이게 된다.

한 가계의 예를 들어보자. 연소득이 1억인 한 가계의 가장이 5억을 대출받아 (이자율 2%) 집을 구매한 경우를 보자. 이 가계의 재정건정성 지표는 500%가 될 것이다. 이 가계는 매년 1000만원의 이자를 내야 한다. 따라서 연소득의 10%를 이자 상환에 지출해야 한다. 만약 이 가장이 다니는 직장이 정년 100년을 보장하는 꿈의 직장이고 가장의 기대수명이 최소한 100년 이상이라면 설령 집값이 안 오르더라도 이 가장의 채무상환은 큰 문제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은행이라도 아무런 걱정없이 이 가장에게 집값의 상승 예상과 무관하게 재정건전성 지표는 500%임에도 불구하고 대출을 해 줄 것이다. 제대로 된 국가는 일반적인 채무자와는 다르게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없는 유일한 경제 주체이다. 보통 이자율은 성장률보다는 낮게 형성되기 때문에 그 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한다면 국가 채무는 결국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그럴 자신과 희망이 없다면 그런 경제는 진작 사달이 났을 것이다.

◇ 기축통화국이라는 미신 또는 돌아온 캉드쉬들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무기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서 힘들다는 주장이다. IMF 구제금융이라는 20여년 전의 트라우마는 아직도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는데 그때의 뼈아픈 경험은 많은 국민들이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가장 고약한 문제는 아직도 많은 경제학자들이 20여년전의 IMF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IMF의 권고 사항을 다시 한번 복기해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철저한 구조조정과 재정 감축 및 이자율 상승이다.

IMF의 구조조정 패키지라고 이야기하는 이들 처방은 IMF가 금융위기가 발생한 나라들에게 일률적으로 처방한 만능 처방전이었다. 문제는 이런 처방전이 틀렸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와 협상을 한 IMF의장이 캉드쉬였는데 훗날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다고는 한다.

수많은 사람이 실직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정부의 복지예산을 줄여서 재정감축을 하는 행위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미는 행위와 같다. IMF가 한순간에 벌어지고 회복하는데 1년이 걸렸다면 코로나 위기는 이미 1년이 지났지만 터널의 끝을 아직도 가늠하기 힘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건전성이라는 족보를 알 수 없는 지표를 가지고 재정지출을 반대한다면 20여년전의 캉드쉬가 또 다시 한반도에 출현한 것과 같다. 차이점은 지금의 위기가 그때보다 더 깊고 넓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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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채무와 순채권의 관계도.
그래프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외순채권(파란색)과 단기채무(오렌지색)가 있다. 단기채무는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외화채권으로 경제에 위기가 생겼을 때 쉽게 만기연장이 안되는 골치 아픈 채무이다. IMF 당시 단기 채무는 1997년 2/4분기에 830억 달러에 이르렀다. 당시의 순채무는 530억 달러였다. IMF 구제 금융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점차 회복했을 뿐 아니라 2020년 3/4분기 기준으로 대외 순채권은 4614억 달러였다. 이중 단기채무는 1441억 달러, 장기채무는 3668억 달러였다. 미국에 문제가 생겨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 기업이 갑자기 단기채무 1441억 달러를 만기 연장을 거부하고 전액 상환을 요구하더라도 충분한 여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2019년 미국과 체결한 원-달러 통화스와프의 규모는 600억 달러이다. 단기에 상당 규모의 달러자금이 빠져나간다 해도 현재 우리나라의 체력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급격한 달러자금 이탈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자금의 입장에서도 큰 손해가 된다. 단기의 달러자금이 우리나라로 들어올 때는 원화로 바꾸어 우리나라의 자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환선물 헤지가 완벽하지 않는 한 다시 해외로의 급격한 자금이탈은 달러환율의 강세를 의미하기 때문에 단기에 큰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

중앙은행간의 통화스와프라는 제도는 이런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 도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2008년에 도입돼 2019년 코로나 위기에는 선진국 6개 중앙은행의 범위를 넘어서서 미국과 중요한 교역국가로 확대된 것으로 2019년 3월의 외환시장에서의 동요를 이미 막아낸 바 있다. 이런 사정은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재정지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이상 설 땅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축통화국의 여부에 관계없이 재정지출은 항상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축통화 여부가 재정지출의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재정건전성이 아니라 국가와 경제 그리고 그 근본인 국민을 살려내야 하는 것이 재정지출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지금은 지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할 때이다. 국가의 명령에 의해 영업을 할 수 없게 된 자영업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직장을 잃은 실업자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논의할 때이다. 이미 일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 끝을 아직도 모르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순간에 아직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한다면 골든 타임을 놓쳐도 한참 놓치게 될 것이다.

필자 양영빈 :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한국인 최초 중국어 도서 ‘옵션실전 매매’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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