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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영화 ‘미나리’, ‘실패의 기억’은 누구의 몫인가

[칼럼]영화 ‘미나리’, ‘실패의 기억’은 누구의 몫인가

기사승인 2021. 02. 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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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가 미국 사회에서 붐을 이루고 있다. 제46회 LA 비평가 협회상에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데 이어, 36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드라마 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골든글로브상에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됐다. 미국 최고 영화제인 아카데미상에서도 오스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미나리는 ‘실패와 그 기억에 대한 영화’이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 타임 내내, 관객은 초조하게 주인공 가족이 어떻게 실패할지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 돼서도 위태로워 보이는 가족은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 관객은 그들이 더욱더 위태롭게 보인다. 빨리 실패하고 어서 재기해야 하는데, 영화는 실패를 거의 맨 마지막 부분에 배치한다. 관객에게도 등장인물에게도 상황을 수습할 최소의 시간은 생략된 채 영화는 갈무리된다.

영화는 그렇게 실패와 성공의 사이클에서 벗어나 있다. 미나리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감독은 일반적인 서사 구조를 파기하고 실패를 엔딩 가깝게 위치시킴으로써 한 이민가정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서사 전반에 걸쳐 배열된 천재지변의 소식,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병약한 아이, 주요 등장인물 혹은 주변 인물들의 불안한 시선과 괴이한 행동들로 인해 그들이 어떻게 파괴될 것인가에 대한 잔혹한 기대는 더욱 증폭된다. 하지만 이 모든 분위기를 무색하게도 의외의 것에서 재앙은 기어이(?) 발발한다.

미나리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풀어 놓은 작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실패’에 대한 기억이다. 이민 1세대인 아버지는 영민한 사람이다. 미래의 시장을 읽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줄 아는 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성공이 반드시 보장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성공 신화에서 실패는 미덕이라는 점이다. 실패는 극복의 대상으로서 적어도 개인사에 있어서 미래에 소환될 일종의 신화적 모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에 대한 또 다른 논란의 한 축은, 미나리가 미국 영화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지는 네티즌들의 논쟁이다. 전술한 골든글로브상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된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영어보다 한국어가 많이 등장하더라도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미국 이민자 가정의 역사를 그리고 있단 점에서 미국 영화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 같다. 맞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다.

사실 미나리는 청교도적 이념을 토대로 하고 있다. 이야기 중간, 주인공 부부는 이민 오기 전의 상황을 기억한다. 서로 구원이 돼줄 것을 약속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이민을 결심한다. 부부가 캘리포니아농장에서 병아리감별사로 시작한 이민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근면한 남자는 성공을 위해 농장을 꾸리고자 그보다 더 시골로 이주한다. 하지만 여자는 아픈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는 대도시 가까이에서 정착하길 바란다.

영화에 구현된 구원, 근면, 성공, 가족애로 대위 되는 가치는 모두 미국 최초 이민자들인 청교도들의 이념이다. 미국인들은 ‘자기의 타자화와 타자의 자기화’라는 뫼비우스적인 호환의 과정을 통해, 한국계 이민자 가정사를 목도하며 자신들의 뿌리를 반추하고 상기한다. 말하자면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성공한 소수민족인 한국인들의 초기 정착기에 맞게 된 실패를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 실패의 기억은 성공한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성공했던 기억을 내면화한 미국인들은, 현재 미국 내 유행하는 한국문화의 성공을 바라보면서 한국인들이 이민 초기에 겪은 실패를 자신들의 기억으로 치환한다. 이는 성공 신화라는 미국적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은 심리적 기제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난한 아버지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실패를 기억하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라는 질문에 답은 쉽다. 그것은 적어도 자신들의 삶이 성공적이었다는 자의식이 내면화된 이들의 무의식적 발로이기 때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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