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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에세이] 우수(雨水), 눈 대신 비가 옴

[이효성의 절기에세이] 우수(雨水), 눈 대신 비가 옴

기사승인 2021. 02.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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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눈 대신 비가 온다는 우수(雨水·rain water) 절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우수는 동지일로부터 60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입춘보다 한층 더 따스해진 햇볕과 함께 봄기운이 돌고, 눈이 비로 바뀌고, 연못이나 강의 얼음에 금이 가면서 녹고, 초목에 이른 싹이 트기 시작하는 때다. 옛 세시기에 따르면 ‘입춘이 지나면 차가운 북풍이 걷히고 동풍이 불면서 얼었던 강물이 녹기 시작한다’고 했다. 여기서 동풍은 얼음을 녹이고 우리의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는, 남녘에서 불어오는 훈풍 즉 봄바람을 말한다.

이처럼 우수는 봄바람이 불고, 매서운 겨울 추위가 가시면서 바람 끝도 에이지 않고, 쌓였던 눈과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눈보다는 진눈깨비나 비가 내리고, 얼었던 땅이 풀리고, 시냇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는 절기다. 슬슬 녹아 없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우수 뒤에 얼음같이’라는 속담은 그래서 생겼으리라. 이 무렵의 나무 가지 우듬지는 홍조를 띠며 싹이 트기 시작하고 들판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도 한다. 대기는 아직 싸늘하지만 이처럼 우수 무렵의 경물은 겨울에는 보기 어려웠던 비, 시냇물, 새싹, 아지랑이 등의 봄이라는 새 계절을 여는 물상들이 많이 나타난다.

우수가 되면 기러기 떼가 시옷자 대형을 지어 북쪽으로 날아가고, 동물들도 더러 동면에서 깨어나기 시작하고, 남녘에서는 동백꽃, 매화, 납매화, 유채꽃, 보춘화, 수선화, 눈꽃풀(snowdrop), 크로커스(crocus)가 피기도 하는 등 봄과 그에 따른 소생의 기운이 온 산천에 가득해져 간다. 그래서 우수 어간에 남녘에서라면 시절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둔감한 사람조차도 봄이 오고 있음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무렵에는 중부지방에서도 매실나무, 산수유, 목련, 벚나무 등의 가지에는 꽃눈이, 은행나무 가지에는 잎눈이, 분화하여 이미 상당한 크기로 망울져 있고, 산야에는 냉이와 민들레를 비롯해 꽃다지, 광대나물, 쑥 등의 이른 풀들이 가녀리게 자라 있다.

우수 절기 에세이 최종
우수를 앞둔 17일 벚나무 잔가지들에 무수한 꽃눈들이 불거져 있다. / 이효성 주필
우수 어간에는 한겨울 삭풍이 잉잉거리고 꽁꽁 얼어붙은 들판은 풀 한 포기 없는 것 같은, 황량하기 그지없는 죽음의 땅처럼 보이는 중부 이북 지역에서도 낮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늘어나서 적당한 햇빛과 온도와 수분이 주어지자마자 그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고 죽은 듯한 땅에서 온갖 생명들이 소생하기 시작한다. 해는 따뜻한 볕으로 겨울의 황량한 들판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어 놓는 천지개벽의 마술 같은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씨앗이나 뿌리로 겨울을 나는 식물들이 이 미세한 자연의 변화를 알아채고 그에 반응한다는 것은 참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다. 이는 흔히 자연의 신비로 또는 생명의 위대함으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신비한 힘 또는 생명의 위대함은 마술이나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고 실은 오랜 세월 동안 생명체가 일조량과 기온의 미세한 변화를 알아채고 봄에는 소생으로 그리고 늦가을에는 동면으로 환경에 적응하고 추위를 극복한 적자생존이라는 생물 진화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동식물은 그냥 알아채는 것을 우리 인간은 과학을 동원하여 겨우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매화는 제주도에서는 입춘 전후부터 그리고 남해안에서는 우수 전후부터 피기 시작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눈 속에서도 피어나기도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휴애리의 봄맞이 매화축제는 우수 무렵에 열린다. 과수(果樹)를 비롯한 나무의 가지치기는 대체로 나무의 생장 휴지기인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하는데, 특히 날씨가 풀리는 우수 절기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간장은 흔히 3월(음력)장이라고 해서 청명 무렵에 담그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더러는 정월장으로 우수 무렵에 담그기도 한다. 홍어의 제철은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의 산란기이지만 겨울에는 너무 추워 홍어 잡이 배들이 주로 날씨가 풀리는 우수 절기에 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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