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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백꽃’ 피는 실레마을의 ‘봄봄’

[여행] ‘동백꽃’ 피는 실레마을의 ‘봄봄’

기사승인 2021. 03. 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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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김유정 생가
김유정 생가 담장 앞 생강나무에 꽃망울이 올랐다. 강원도 사람들은 노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단다. / 김성환 기자
강원도 춘천 신동면에 실레마을이 있다.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이다. 김유정은 한국인이 참 좋아하는 작가다. ‘봄봄’ ‘동백꽃’ 같은 단편소설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구수한 사투리와 우리말 단어로 풀어내는 해학이 사람들을 웃기고 울린다. 작품 속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도 정이 간다. 이런 작품을 다시 읽어 보면 봄햇살 같은 온기가 온몸에 스미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날씨 좋은 날에는 실레마을을 직접 찾아 산책을 해도 좋다. 여기서는 보고 듣는 것이 다 예쁜 소설 같다.

여행/ 김유정 생가
실레마을 김유정 생가. 김유정의 집안은 마을에서 제일가지는 부자였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해 초가를 올렸단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김유정이 살았던 실레마을은 어땠을까. 그는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이렇게 풀어 놓는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주위가 이렇게 시적이니만치 그들의 생활도 어디인가 시적이다. 어수룩하고 꾸물꾸물 일만하는 그들을 대하면 딴 세상을 보는 듯하다...”

여행/ 김유정 생가
김유정 생가는 ‘ㅁ자형’ 가옥이다. 안으로 들어오면 고요하고 아늑하다./ 김성환 기자
‘딴 세상’ 같은 실레마을에서 김유정은 1908년 2월에 태어났다.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지냈지만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한 후 23세에 다시 고향에 왔다. 여기서 보고 겪은 것을 소재로 단편소설 ’산골 나그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서 첫발을 딛는다. 실레마을은 그의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 그가 남긴 30여 편의 작품 중 10여 편의 배경이 실레마을이다. ‘봄봄’ ‘동백꽃’도 포함된다.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야’ 했던 곳은 이제 가기가 수월해졌다. 고속도로가 놓이고 경춘선 전철로도 갈 수 있다. ‘뚜벅이족’ 연인이나 대학생들은 경춘선 전철을 타고 김유정역까지 간다. 김유정역은 원래 신남역이었다. 2010년 김유정의 이름을 따 김유정역이 됐다. 옛 역사 옆에 한옥형태의 새 역사가 들어섰다. 옛 역사도 여전히 남아있다. 옛 역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청춘’들이 많다.

여행/ 김유정 생가 '봄봄' 동상
김유정 생가 마당에는 ‘봄봄’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동상이 있다. 가운데 점순이를 두고 데릴사위(왼쪽)와 장인이 승강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김유정 기념 전시관
김유정기념전시관/ 한국관광공사 제공
실레마을은 김유정역에서 걸어서 약 5분 거리다. 마을 어귀에는 김유정문학촌이 있고 이 안에 초가지붕을 얹은 김유정의 생가가 있다. 김유정의 집안은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자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생가 역시 웬만한 기와집보다 크고 번듯한 한옥이다. 그런데 초가지붕? 당시 마을에는 초가집이 대부분이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기 위한 배려로 초가를 올렸단다. 김유정 집안 사람들은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댓말을 썼다고 전한다. 생가가 ‘ㅁ자형’인 것도 독특하다. 툇마루에 앉아 있으면 아늑하고 사위가 아주 조용하게 느껴진다. 지붕 가운데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또 운치가 있다. 생가 담장 앞에는 생강나무 몇 그루가 자란다. ‘동백꽃’에 등장하는 동백꽃은 생강나무꽃이다.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 불렀단다. 얼핏 보면 산수유꽃과 참 많이 닮았다. 생강나무꽃은 이제 노란 꽃을 피울 태세다. 김유정문학촌 관계자는 “꽃몽우리가 올라오고 있다. 이달 말에는 꽃이 활짝 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여행/ 실례마을
실례마을을 에두르는 실례이야기길/ 김성환 기자
생가 주변에는 소설의 주인공 동상들이 많이 있다. 생가 마당에는 ‘봄봄’ 주인공들의 동상이 서있다. 키 작은 점순이를 사이에 두고 데릴사위와 장인이 승강이를 한다. ‘봄봄’은 주인집 딸 점순이와 결혼하려고 오랫동안 억척스럽게 일만한 어수룩한 데릴사위가 장인에게 빨리 혼례를 치러달라고 떼를 부리다가 된통 당하는 내용이다. 생가 앞 작은 연못 인근에는 ‘동백꽃’의 점순이가 닭싸움을 시키는 동상도 있다. 생가 길 건너편에는 단편소설 ‘솟(솥)’의 주인공들이 소설 속의 한 장면을 만든다. 들병이(병에다 술을 담아 다니며 파는 여인)와 바람이 나서 집안 재산목록 1호인 솥단지를 훔친 근식이와 솥을 찾으러 달려온 아내, 아기 업은 들병이와 그 남편까지 어우러진다. 소설의 장면이 오버랩되며 절로 미소짓게 된다.

김유정의 작품 활동과 관련한 자료를 전시한 김유정기념전시관도 문학촌 안에 있다. 또 문학촌 건너편에는 김유정이야기집이 있다. ‘봄봄’ ‘동백꽃’을 애니메이션으로 상영한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김유정의 작품을 다양한 버전으로 갖춰놓은 유정책방도 눈길을 끈다.

여행/ 옛 김유정역
옛 김유정역/ 한국관광공사 제공
실레마을을 에두르는 ‘실레이야기길’ 열여섯마당도 재미있다. 길마다 작품 속 장면에서 따온 이름을 붙였다.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 나오던 데릴사위길’(소설 ‘봄봄’),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소설 ‘동백꽃’), ‘복만이가 계약서 쓰고 아내 팔아먹던 고갯길’(소설 ‘가을’),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소설 ‘솟’) 같은 식이다. 실제로 여기서 벌어진 일들이 소설의 소재가 됐다. 오래 전 산중의 ‘빈약한 촌락’에서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나 보다.

실레마을 뒤로는 금병산(652m)이 우뚝하다. 산 좋아하는 이들은 등산로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기도 한다. 등산로 역시 소설 속 장면의 이름이 붙어있다. 등산로에는 잣나무 숲도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 또렷하고 흙냄새, 풀냄새도 좋다.

여행/ 김유정 레일바이크
김유정레일바이크 출발지점/ 한국관광공사 제공
여행/ 김유정레일바이크
김유정레일바이크/ 한국관광공사 제공
봄이 내려 앉는 실레마을은 평온하다. 김유정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부잣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랐지만 나중에는 가세가 기울고 병마까지 덮치며 힘든 생활을 했다. 사랑도 절절했다. 1928년 당대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의 공연을 보고 그에게 홀딱 반해 열렬하게 구애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다. 가난과 폐결핵으로 고생하다 1937년 3월 29일 2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김유정은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남아 지금도 독자를 웃기고 울린다. 매년 3월 29일에는 김유정문학촌에서 춘천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추모제가 열린다. 올해도 예정돼 있다. 봄에는 꽃구경도 좋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음미하며 호젓하게 산책하는 일도 운치가 있다.

하나만 더 보태면 실레마을을 구경한 후 레일바이크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김유정역 인근에서 출발한다(강촌레일파크 김유정레일바이크). 북한강을 굽어보며 옛 강촌역까지 약 8km 구간을 달린다. 풍경은 자동차를 타고 가며 보는 것과 완전 다르다. 느릿하게 흐르는 천연한 자연이 마음을 참 평온하게 만든다. 바람이 시원하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강촌역에 도착하면 셔틀버스를 타고 다시 출발지인 김유정역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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