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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을 맞은 의미가 없어요” 접종 후에도 여전히 갇혀있는 노인들

“백신을 맞은 의미가 없어요” 접종 후에도 여전히 갇혀있는 노인들

기사승인 2021. 03. 2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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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노인요양시설
독일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완료한 노인요양시설 거주 노인들과 그 가족들이 백신 접종 전과 변함 없이 엄격한 접촉금지 규정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독일 남부지역 노인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엘리자베스(90)는 오늘도 시설 내 개인 거주 공간에서 혼자 식사를 마친 후 말 없이 하루 종일 음악을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몸을 씻고 옷을 입는 것을 돕거나 식사를 전달하기 위해 잠시 방문하는 요양보호사와 청소도우미 외에는 아무도 그녀와 접촉할 수 없다. 3주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받고 항체가 형성된 것을 확인했으나 그녀의 삶은 여전히 격리공간에 갇혀있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른 별도의 해제조치가 없는 연방 보건부의 방역 규정 때문이다.

“백신 접종을 통해 실제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백신 접종을 처음 받았을 때 큰 안도감을 느꼈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옆방 친구들과 함께 식사하며 밀린 대화를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증손자들을 품에 꼭 안을 수 있기를 고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백신 접종 전과 변한 것이 없습니다. 공용 식당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도 없고 방문은 엄격한 방역조건하에 한 사람만 가능합니다. 이 모든 것이 저에게는 매우 충격적이고 절망적입니다”

독일은 지난해 12월 노인요양시설 거주자 및 근무자를 우선순위로 분류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20일(현지시간) 기준 324만 5985명이 2차 접종을 완료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요양시설 거주자에 대한 방역 조치는 백신 접종을 완료하기 전과 거의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현지 시사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은 지난 3일 “많은 요양시설 거주 노인들이 백신 접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는 오랜 격리조치로 고통 받고 있다”며 노인 및 장애인의 존엄성과 자결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 ‘비바(BIVA-Pflegeschutzbund)’의 설문조사내용을 보도했다.

‘백신 접종 이후 시설 방문 및 접촉 규정에 변화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요양시설 거주 가족 중 80% 이상은 ‘방문금지 또는 제한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응답자 중 11.2%는 ‘오히려 격리 조치가 강화돼 방문이 전혀 불가능했다’고 답했다.

‘방문 제한이 완전히 철회됐다’라고 말한 응답자는 0.6%에 불과하다. 제한적으로 방문이 가능했던 응답자 중 24%는 ‘방문 시간이 지나치게 제한돼 제대로 서로의 상황과 감정을 인지할 수도 없었다’고 호소했다. ‘앞으로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25%는 ‘앞으로도 이런 엄격한 제한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독일 윤리위원회는 백신 접종을 받은 요양시설 거주자에 한해 방문 및 접촉 제한을 해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요양시설협회측은 현재로서는 요양시설 내 ‘백신 접종 완료자’에 대해 별도의 접촉금지 해제 규정이 없는 연방 보건부의 시행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윤리위원회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요양시설 거주자에 대한 접촉 금지 해지는 ‘특별한 권리’가 아닌 ‘불가피한 상황에 따라 감수해야 하는 불이익’을 정당한 조건 하에서 철회하는 것을 요청한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번 주말에도 요양시설의 방역규칙에 따라 짧게나마 손자를 만난 엘리자베스는 창문가에 다가가 엄마와 함께 건물 밖에서 증조할머니를 올려다보는 어린 증손자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아쉬움을 달랬다.

“이미 90살을 넘긴 나는 매일 내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생각해요. 하루에도 몇 번씩 밀려오는 감정에 우울증이 생길 것 같아요. 오랫동안 격리생활을 한 시설 내 지인들 중 몇은 치매가 급속도로 진행됐다고 들었어요. 하루하루 남은 날을 소중하게 여기는 노인들에게 지금의 생활은 그저 재앙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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