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42세 이탈리아 직장인이 퇴사한 이유는?...이탈리아의 직장문화

42세 이탈리아 직장인이 퇴사한 이유는?...이탈리아의 직장문화

기사승인 2021. 03. 28. 08: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22년 IT 전문가 이탈리아 직장인의 퇴사 이유
이탈리아, 혈연·지연·사적 관계 중시 사회
시스템 비효율적·낙후, 상사 갑질까지
20200806_195020
밀라노의 상징 두오모. 이탈리아는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늑장행정과 정확하지 않은 일처리로 악명이 높다./사진=밀라노=정덕희 통신원
22년 동안 정보통신(IT) 업계에서 일하던 안드레아 씨(42세)는 지난 연말에 회사를 그만두고 유튜버로서의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업 시장이 그리 녹록한 편은 아닌 시기에 굳이 퇴사를 강행했을까?

밀라노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던 그는 당시 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염려가 높았던 덕에 졸업도 하지 않아 한 신문사의 IT 자회사에 취업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컨설팅 회사를 앞세운 회사의 구조조정 때문에 4년 만에 다른 신문사의 서버와 네트워크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직을 해야 했다.

불운하게도 그곳의 노동 환경은 열악했다.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에도 불구하고 수당이 지급되지 않았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1년 만에 이탈리아의 한 보험사로 이직을 하게 되는데, 3년 후에 이 회사가 독일의 거대 금융회사에 합병이 되며 이 회사의 자회사 직원의 신분이 됐다. 합병되고 3년간은 근무 환경에 매우 만족했다. 퇴근 시간이 정확하게 지켜졌으며 업무 강도도 적당하며 스트레스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사내에서 고위 간부들 간 알력으로 인해 분위기가 급변했다. 합병된 이탈리아 회사의 사장이 독일 본사에서 내려온 새로운 사장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했는데 이때 그가 신임 사장을 괴롭히기 위해 일을 잘하고 있던 기존 회사 조직을 와해시켰다. 일부는 지방으로 발령내고, 일부는 해고했다. 이때 안드레아 씨도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잃었으나 다행히 그를 신임하던 직속 상사에 의해 직장에 복귀하게 된다.

다시 돌아온 직장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새로운 독일인 사장은 기존 인력의 반만 충원했다 같은 양의 일을 절반의 인원으로 해내려니 업무 강도가 상당히 세졌다. 더구나 독일 회사는 오래전부터 사내 서버와 네트워크·장비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여서 문제가 계속 누적이 됐다.

강도 높은 업무와 비효율적인 업무시스템으로 인해 안드레아 씨는 신경 쇠약에 걸려 한 달간 병가를 내야만 했다. 13년간 일했던 이 회사도 첫 회사처럼 컨설팅 회사를 앞세워 구조조정을 하기 시작했고, 이에 그는 또다시 작은 소프트웨어 회사로의 이직을 결심한다.

이직한 회사는 직원들을 각 기업에 파견을 보내 근무하게 했는데 이번에는 스위스계 통신사의 클라우드 서버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하지만 원청사인 이 기업은 같은 업무에 대해 10개의 다른 하도급 소프트웨어 회사와 계약을 하는 관행을 가지고 있었다. 클라우드 서버 관리라는 같은 업무를 경쟁사인 10개사 소속의 25명의 직원이 같이 근무하니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더욱이 10개 사는 계약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회사로 대체가 되기도 했다. 이러니 책임 소재가 분명하지 않고 전임자가 없어 간단한 일을 해결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특정 기계가 고장이 나면 도입자·담당자, 심지어는 설명서도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탈리아 특유의 혈연과 지연을 중시하는 문화 때문에 매니저 자리에 IT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종종 오기도 한다. 이 경우 부하 직원이 일을 모두 떠안아야 해 일이 제대로 진행이 어렵다. 심지어 업무 이해도가 낮은 매니저가 실수를 저질러 회사에서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도 그 매니저는 해고되지 않는다. 실무자는 뒤처리로 고생을 할 뿐이다.

체계가 없는 회사 시스템에 실망한 그는 프랑스계 은행의 업무를 담당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로 이직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는 두 달 만에 퇴사했다. 이유는 상사의 갑질 때문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에 권위적인 성격인 그의 밑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18개월 동안 12명이나 퇴사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가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속 상사가 여자친구였기 때문이다.

안드레아 씨는 네덜란드 금융회사의 클라우드 업무를 담당하기로 하고 다른 회사에 입사했지만 한달 만에 프로젝트가 취소되며 해고됐다. 낙담한 그는 겨우 이탈리아의 신재생 에너지 회사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이곳도 이탈리아 특유의 혈연과 지연으로 인한 문제, 비효율적이고 낙후한 회사 시스템은 그대로였고 결국 안드레아 씨는 1년 만에 퇴사를 결심하고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로 살기로 한다.

그는 “이직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나라 전체의 시스템이 낡고 비효율적이더라고요. 더는 이런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가며 일하고 싶지 않아요. 많은 이탈리아의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이유로 이탈리아를 떠나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죠. 저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지만 이곳에는 희망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