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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배달해 드립니다”...계단 연주회를 배달하는 독일의 음악가들

“음악을 배달해 드립니다”...계단 연주회를 배달하는 독일의 음악가들

기사승인 2021. 04. 04.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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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음악회
다세대 주택 공용 계단에서 미니 콘서트를 선보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 캄머필하모니(Kammerphilharmonie Frankfurt) 단원들/출처=캄머필하모니 공식 인스타그램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다세대 주택 1층 현관 입구에서 마스크를 쓴 두 여성이 각각 첼로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이 4층 규모의 건물 내부에 울려 퍼지고 각 층에 거주하는 총 12세대 주민들은 현관문만 열어둔 채 각자의 집에서 이 특별한 콘서트를 즐긴다. 연주가 끝나자 입주민들의 박수 갈채가 쏟아지고 두 연주자는 악기를 챙겨 들고 다시 건물을 빠져나간다. 일명 ‘음악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랑크푸르트 캄머필하모니(Kammerphilharmonie Frankfurt)의 미니 콘서트다.

독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봉쇄령이 1년을 넘어가면서 배달 서비스가 급격히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라이브 음악’을 집으로 주문하는 새로운 배달 문화는 코로나19 시대의 새로운 배달 장르로 떠올랐다. 프랑크푸르트 캄머필하모니가 제공하는 ‘라이브 음악 배달 서비스’는 매주 일요일 오후 개인간 접촉 위험이 없는 공용 계단이나 현관 등 건물 내 특정 공간으로 주문할 수 있다. 미니 콘서트의 공식적인 비용은 무료지만 음악을 공동으로 주문한 주민 대부분은 돈을 모아 연주자에게 전달하곤 한다. 미니 콘서트는 두 연주자가 한 팀을 짜 회당 매 10분 정도 진행하며 각 팀은 릴레이 콘서트를 이어나가는 일요일 오후 3시간 동안 대략 5~6곳의 건물을 방문한다. 지난해 가을 계단 콘서트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1년 넘게 라이브 음악 연주를 경험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위로를, 다시 청중들에게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된 연주자들에게는 잠시 잃었던 경험을 되찾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달 이웃들과 음악 배달을 주문했던 헬레나는 코로나19 대유행 시작과 함께 첫 아기를 낳았다. 지금까지 나들이 및 여행은 물론 사람간의 접촉 없이 육아를 해왔던 그녀는 이 ‘미니 콘서트’로 잠시나마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전 언제나 음악을 사랑했어요. 오페라, 뮤지컬, 클래식 연주회를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지금은 마지막으로 라이브 음악을 들었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아 가족간 불화도 잦았죠. 그런데 이번에 아기를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 현관문 근처에 앉아 라이브로 음악을 들었을 때 큰 행복감을 느꼈어요. 다시 희망을 가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건강한 일상을 꾸려나가야겠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코로나19로 인해 재정적으로 고통 받는 음악가들을 지원하는 취지도 좋았어요.”

프랑크푸르트 캄머필하모니의 전무 이사이자 예술공연 관리를 담당하는 니콜라 복은 지난 2일(현지시간)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작년 초 봉쇄령이 처음 시작된 그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다”며 전염병 대유행 속에서 겪는 예술가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대유행 초기 모든 공연이, 심지어 수수료도 없이 취소되는 일을 겪었을 때 내가 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자문했습니다. 실시간 온라인 공연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라이브 공연과는 비교할 수 없죠. 청중은 온라인 공연에 박수를 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청중의 에너지를 느끼지 못하는 음악가는 길을 잃었다고 느끼고 좌절하게 됩니다. 게다가 모든 프리랜서 음악가들이 온라인 공연을 하는 데 필요한 고가의 음향장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캄머필하모니는 거주민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앞뜰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거주민들은 각자의 발코니에서 음악을 즐기며 샴페인과 커피, 케이크 등을 먹고 환호와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마치 일요일 오후에 열린 이웃간의 단란한 파티처럼 보인다.

“때로는 건물 구조가 소리 전달에 방해가 되는 탓에 모든 거주민들이 함께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습니다. 음악 배달을 주문한 사람만 감상하고 다른 사람들은 문조차도 열지 않거나 심지어 스피커로 시끄러운 락음악을 틀며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할 수 없는 것도 이 ‘음악 배달’의 묘미입니다. 한번은 한 건물 안에서 한 가족은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우리를 맞이하고 다른 가족은 운동복을 입은 채 맞아주더군요. 이런 것도 이런 배달 미니 콘서트만의 장점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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