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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전쟁’ 평행선 달리던 LG-SK, 극적 합의 배경은

‘배터리 전쟁’ 평행선 달리던 LG-SK, 극적 합의 배경은

기사승인 2021. 04. 1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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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게 더 많아"…K-배터리 中·日 추격 부담
3조원대 현지 투자·수천개 일자리 날아갈 판
미국 행정부, 한쪽 편 들 수 없어 합의 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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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년 넘게 배터리 소송전을 벌이던 LG와 SK가 전격 합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 마감일 하루 앞두고서다. 한국 정부는 물론 미국 정부의 강력한 합의 종용 덕분에 물꼬를 튼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다 양 사 모두 소송전이 장기화될수록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아진다’는 전략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 사가 이번 국내외 소송전까지만 해도 이미 수천억대 자금을 쏟아부었던 만큼 소모적인 전쟁보다 K-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극적 합의를 이룬 셈이다. 이로써 SK그룹은 미국에서 사업을 계속 할 수 있게 됐고, LG그룹은 소송 리스크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11일 새벽(한국 시간) 미국 현지에서 LG그룹과 SK그룹은 2019년부터 이어진 배터리 영업비밀·특허 침해 소송전에 관해 결국 합의점을 찾았다. ‘강대강’ 대치 속에 각 사가 주장했던 3조원과 1조원 사이, 2조원으로 합의금은 최종 결론 났다. 현금 1조원과 로열티 1조원 등이다. 여기에다 향후 10년 간 쟁송을 제기하지 않기로도 약속했다. 이날 각 그룹의 배터리사업을 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각각 이사회를 열고 이같은 합의 내용을 최종 승인했다. 그동안 한·미 정부로부터 갖은 질타를 받은 끝에 이뤄진 전격 합의다.

이 사건의 발단은 2017년 LG화학의 배터리사업부(현 LG에너지솔루션) 직원 80여 명이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이직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2018년 SK이노베이션이 폭스바겐 물량을 수주하자 당시 업계 1위였던 LG에서 이의를 제기, 2019년 4월 29일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영업비밀 침해·산업기술 유출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특허 침해·명예훼손으로 맞불을 놓자, LG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 침해 맞소송을 또 냈다.

결국 지난해 2월 ITC는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가 맞다”는 조기패소 결정을 내렸다. 올 2월에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부품과 소재 등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수입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다만, 미국 고객사들을 우려해 포드와 폭스바겐 일부 차종에 대해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반면 특허 침해의 경우 올 3월 ITC는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예비결정을 냈다.

판결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비롯해 사실상 미국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SK는 ‘바이든 대통령이 ITC판결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며 총력전에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조지아주 공장 3조원 투입을 통한 일자리 2600개 창출을 못하게 돼 미국 사업을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한은 오는 12일(현지 시간 11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 거부권 행사는 SK 측 손을 들어주면 LG 측 지적재산권에 대해 반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셈인데, 중국과의 지적재산권 문제로 분쟁하고 있어 부담이었다. 거부권 행사를 하지 않자니 SK 측을 저버리며 수천개 현지 일자리와 3조원 현지 투자를 날리게 되는 셈과 같았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에서 양 사의 원만한 합의를 강력히 종용했다는 전언이다. 그동안 정세균 국무총리도 “낯 부끄러운 다툼”이라고 날선 비판을 하며 합의를 권해왔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양 사가 합의하도록 계속 중재를 했으며, 거부권 행사 결정 하루 전에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는 양 사의 합의에 대해 “이제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비해 미래를 위한 준비에 나서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도 이차전지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미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외에도 양 사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국영 기업인 CATL, 일본의 파나소닉 등의 맹추격도 양 사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포드와 폭스바겐 등도 SK이노베이션 고객사였지만, ITC 판결이 인용될 경우 각각 4년과 2년 내 다른 협력사를 찾아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진흙탕 싸움으로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입혀진 상황에서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회사에 대한 대외 신뢰도도 하락한 상태에 이르게 된 까닭이다. 이에 따라 어부지리로 다른 나라가 이득을 볼 것이라는 업계 안팎의 비판도 거셌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사장은 “한·미 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발전을 위해 건전한 경쟁과 우호적인 협력을 하기로 했다”며 “특히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이를 통한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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