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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독립운동가,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

5월의 독립운동가,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

기사승인 2021. 04. 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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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비밀결사 소녀회 결성···백지동맹사건 주도
5월의 독립운동가에 장매성 등 4명 선정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독립기념관은 장매성(1911~1993)·박옥련(1914~2004)·박현숙(1914~1981)·장경례(1913~1997)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제공=보훈처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장매성(1911~1993)·박옥련(1914~2004)·박현숙(1914~1981)·장경례(1913~1997) 선생을 ‘2021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1928년 여성 항일운동단체 비밀결사 ‘소녀회’를 결성,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해 활동한 주요 인물들이다.

1928년 11월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 선생 등은 광주사범학교 뒷산에 올라 여성 항일운동단체인 소녀회를 조직했고, 이듬해인 1929년 5월에는 장매성 선생의 집에서 박현숙 선생 등이 소녀회에 가입했다.

소녀회는 “여성을 남성의 압박에서, 한국인을 일본의 압박에서, 무산대중을 자본계급의 압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 해방,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지향했다.

또 독서회 회원들이 만든 연합 단체인 ‘학생소비조합’이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는 등 남학생들이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 활동도 펼쳤다.

특히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났을 때 소녀회원들은 붕대와 도포약을 가지고 뛰어와 부상 학생을 치료하는 한편 한 손에 두 개의 물 주전자를 들고 다니면서 열광적인 구호에 타는 목을 축여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울러 광주학생운동을 지지하는 동맹휴학으로 구속된 학생의 석방을 주장하며 시험을 거부하고 백지 답안지를 제출한 ‘백지동맹사건’의 검거자 12명 중 11명이 소녀회와 관련된 인물이었다.

일제는 소녀회 및 백지동맹사건 연루된 20여 명 학생의 부모를 불러 퇴학을 종용, 결국 박현숙 선생은 1930년 1월에, 장매성·박옥련·장경례 선생은 1930년 3월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소녀회는 일본 경찰이 광주학생운동 관련자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독서회가 드러나면서 함께 발각됐고, 소녀회 관련자 11명은 검거된 지 9개월 만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광주지방법원이 생긴 이후 최초의 치안유지법 위반 사건이고, 광주학생운동이 발단이 되어 발견된 비밀결사 사건으로 언론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그해 10월 6일에 열린 1심 공판에서 검사의 구형대로 장매성 선생은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고, 그 외 10명의 여학생은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장매성 선생은 1년 2개월 14일의 옥고를 치르고 1932년 1월 22일에 가석방됐다.

이 사건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소녀회 회원들은 광복 이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후신인 전남여자고등학교의 명예 졸업장을 받았다.

정부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장매성·박옥련·박현숙·장경례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수여·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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