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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연산군 4>

임금의 마음, 詩로 읽고 寫眞으로 보다! <연산군 4>

기사승인 2021. 05. 09.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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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지와 연못에 비친 부용정의 모습.
<연산군>
4. 무제
悼極難收淚 너무나 애달파서 눈물이 마르지 않고
悲深睡不成 슬픔과 비통함이 깊어 잠이 오지 않네
心紛腸似斷 어지러운 마음에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하고
從此覺傷生 이런 이유로 생명이 다치게 됨을 깨닫게 되는구나

연산군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해설>
폭군으로 잘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연산군은 상당한 수준의 문학적 재능과 서정적인 감성의 소유자였다. 연산군이 폭정으로 인해 폐위되면서 그가 남긴 시문은, 별도의 문집도 없고 국왕의 시문집인 《열성어제》에도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연산군일기》에 130여 편의 시가 남아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아주 풍부했던 왕이었다. 그가 남긴 시들을 보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자연에서 느끼는 서정성, 흥청들과의 유흥, 신하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와 증오 등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그중에서도 《연산군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의 소재는 흥청들과의 사랑이다.
1505년(연산군 11) 음력 9월 16일 자에 기록된 이 시는 연산군이 아끼던 월하매가 죽자 그녀를 그리워하며 쓴 것이다.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하루 전날 가흥청의 나인으로 있던 원주기생 월하매가 죽자 그녀에 대해 마음을 시로 토로하였다. 월하매는 정식 흥청은 아니고 예비 기생으로 노래를 잘 불러 연산군의 사랑을 받았지만, 지병으로 몸이 아파 오래 살지 못하고 죽었다. 연산군은 월하매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친히 문병했을 만큼 그녀를 아꼈다. 그래서 월하매에게 ‘여완(麗婉·예쁘고 아름답다)’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제문을 갖춰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물론 제사에 재상들까지 참석하게 했으니, 신하들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이태훈. 에디터 박성일기자 rnopark99@as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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