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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탈출기, ‘모가디슈’

[칼럼]탈출기, ‘모가디슈’

기사승인 2021. 08. 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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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영화 ‘모가디슈’는 탈출기이다. 모든 탈출기의 동인이 다르겠으나 그 이유와 목적은 생존에 있다. 핍박 혹은 전쟁과 같은 폭력에 노출된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생존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죽기를 각오한다.

류승완 감독은 소말리아내전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남과 북의 대사관직원들이 서로 협력했던 실화를 상업영화 코드에 맞게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더불어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이 또다시 각자의 체제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로가 애써 외면해야 했던 상황을 엔딩신에 담아 분단된 한반도의 비극을 담담한 어조로 고발한다.

특별히 영화의 마지막 쇼트는 완벽한 데칼코마니로 끝이 난다. 생사를 같이했던 등장인물들은 남과 북에서 파견된 정보요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각각 화면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모든 사람이 퇴장할 때까지 빈 공항의 풍경을 카메라는 고정된 쇼트로 무심하게 잡는다. 그 과정이 정확하게 좌우 균형을 맞춘 대칭을 이루며, 탈출기의 막이 내린다.

내러티브의 전개 역시 마찬가지로 남과 북이 서로 상대에게 데미지를 가하는 외교전쟁을 치르며 균형을 이룬다. 남과 북이 대사관저에서 동거를 시작한 날에도 남측은 위조 전향서를 작성하며 북의 대사관직원들을 대상화하고, 북측 역시 수적으로 많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여차하면 남한 대사관을 무력으로 접수할 생각을 한다. 이 작위적 균형의 긴장감으로 인해 관객은 끊임없이 돌발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균형은 우리의 감각에 아이러니하게도 깨질지도 모르는 불안감으로 다가온다.

엄밀한 의미에서 균형이라는 것은 위태로운 것이다. 모든 균형 상태는 이미 임계치에 다다른 불균형의 감각적 착시다. 예를 들어 지진은 오히려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지 불균형상태가 아니다. 불균형은 오히려 지진 이전에 정점을 찍는다. 겉으로는 균형이 맞추어진 듯하지만 사소한 사건만으로도 뇌관이 되어 그 균형은 무너진다. 거시적 관점에서 지진과 전쟁은 그렇게 균형을 맞추는 행위지만 그 여파가 너무 가혹하다. 수많은 여진을 동반하고 그 과정 중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상자가 발생한다. 그렇게 구축된 균형의 결과 역시 새로운 파괴의 원인으로 잠재된다. 말하자면 가공할 폭력적 상황을 미래로 떠넘기는 임시방편이자 효과일 뿐이다.

영화 ‘모가디슈’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남과 북의 대치와 힘의 균형이라는 것의 위태로움을 직시하게 한다. 이념의 시대가 지났건만 여전히 이데올로기 전쟁 중인 한반도 상황을 질타한다. 극의 하이라이트 카 체이싱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대사관을 탈출하면서 버려질 책들을 탑승할 차의 방탄 장치로 활용한다. 실화와는 다른 영화적 상상력이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책으로 상징되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서로를 적대시하는 이념 자체야말로 총탄 세례를 받아야 할 무엇이다. ‘모가디슈’는 이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총알받이가 된 지난 역사를 전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북한측 역시 끝까지 이념으로 무장돼 있던 보위부 요원은 죽는다. 이념의 시대가 끝나야 한다는 선언으로 해석돼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소망 성취로 끝내지 않고 리얼리티로 마무리한다. 생존을 위해 서로가 눈길을 피하고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제각각의 체제로 돌아가는 상황을 데칼코마니로 묘사함으로써 21세기에도 이념이라는 구태의 이름으로 폭력을 내재한 균형 상태의 한반도를 직시하게 한다.

한편 탈출기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속한 대다수의 존재는 절대적 악으로 표현되기 일쑤다. 영화에서도 소말리아의 정부군이나 반군, 어린아이들까지 악화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들의 주검을 차량으로 짓밟고 넘어가도 잠시 끔찍할 뿐, 그런 상황에선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진다. 어쩌면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20세기의 모든 작위적 균형이 무너진 비극적 공간이야말로 소말리아다. 그곳이 우리의 미래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분단의 지뢰밭에 이념이라는 뇌관들을 제거해 나가야 한다. 전쟁 불사를 부르짖는 이들이 설 자리가 없게, 평화의 씨앗을 이식하는 일이야말로 미래의 전쟁을 탈출하는 유일한 길임이 분명하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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