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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처, 백범 김구 서거 73주기 추모식 거행

국가보훈처, 백범 김구 서거 73주기 추모식 거행

기사승인 2022. 06. 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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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식 처장 "백범 선생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
백범 김구 선생 제73주기 추모식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엄수된 ‘백범 김구선생 제73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를 마친 뒤 묵념하고 있다./송의주 기자
국가보훈처는 26일 ‘백범 김구선생 제73주기 추모식’을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관으로 엄수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독립유공단체장, 광복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행사는 정양모 기념사업협회장의 식사(式辭), 내빈 추모사, 숙명여대 합창단의 추모가,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1876년 8월 29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1894년 동학군의 선봉장을 역임한데 이어,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준·이동녕 등과 함께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또 1908년 독립지사들의 비밀 결사 조직인 신민회(新民會)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등 기울어가는 조국을 구하고자 의병활동과 계몽운동을 비롯한 다양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망명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선임된 선생은 이후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역임하는 등 평생을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마침내 조국의 자주독립을 쟁취했지만, 1949년 6월 26일 선생이 개인 사저로 사용했던 경교장에서 안두희(案斗熙)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73년 전, 흉탄에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오직 조국을 걱정하신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이라며 “우리 국민들이 백범 선생의 숭고한 생애와 독립정신을 기억·계승함으로써, 언제나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오늘의 정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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