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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의 중기피아]가해자가 된 피해자...괴물로 변한 노조

[최성록의 중기피아]가해자가 된 피해자...괴물로 변한 노조

기사승인 2022. 07.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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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노조, 일반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보다 카르텔 구축에 혈안
성실한 회사와 그 직원들까지 사지로 몰아넣어선 절대 국민 신뢰 못얻어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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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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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을 넘어서' 中

# 그의 별명은 '탱크보이'였다. 빙과류를 너무 좋아해 만나는 선임마다 PX에서 쮸쮸바인 탱크보이를 사달라고 졸랐기 때문이다. 그는 선임한테만 탱크보이를 사달라고 하지 않았다. 후임 병사들에게도 사줄 것을 강요했다.

위계질서가 확실한 군대에서 만날 때마다 탱크보이를 사달라 하니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그는 부대에서 '왕따'가 됐다. 선임이나 후임 모두 그를 무시했다.

그 누구의 협조도 못 받으니 무슨 일을 하기도 벅차보였다. 당시 부대 막내였던 나는 그가 불쌍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동정했다.

외로웠던 그 역시 고참들 눈을 피해 나를 부대의 후미진 곳으로 데려갔다. 외진곳에서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경험한 탱크보이는 누구보다 음악과 영화를 사랑한 보통의 대학생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인 그에게 군대는 맞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늘 따라다녔다.

그가 나에게 자주했던 말 "난 이유 없이 괴롭히지 않을 거야. 후임들은 '쫄따구'가 아닌 '사람'으로 대우해줄 거거든. 난 '상명하복'밖에 없는 군대라는 조직을 '휴머니즘'이 넘치는 세상으로 만들겠어. 두고봐."

# 시간은 지났다. '고문관'이라며 그를 괴롭히던 고참들이 하나, 둘 전역했다. 탱크보이는 부대에서 '실세'자리에 올랐다. 실세가 되니 행동이 달라졌다.

후임들을 때리고 인격모독도 서슴지 않았다. 책 하나 잡히면 하루 종일, 아니 한 달도 넘게 괴롭혔다.

누나가 있는 후임에겐 "소개시켜 달라"며 땡깡을 부리기도 일쑤였다. 후임이 곤란한 의사를 밝히면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며 시비와 폭행을 일삼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부 고참과 후임들이 그를 설득하려고 나섰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국놈들은 맞아야 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 부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라며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나중에는 대화조차 되지 않았다. 자신의 얘기를 한 사람들에게는 화를 내며 멱살부터 잡았다. 음악과 영화를 논하던 옛날 모습을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에게 세상은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으며, 남들의 평판 따위는 절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가 믿는 신에게 잊지 않고 기도는 꼬박꼬박 했다.

탱크보이가 군복무를 마치는 날 아무도 그를 축하해 주지 않았다. 그에게 다가가 그간 있었던 얘기를, 아니 저주를 퍼부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며 "용서해 달라"고 절규했다.

탱크보이는 전형적인 '가해자가 된 피해자'였다. 누구보다 괴물을 싫어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괴물이 된 것이다.

이 해괴한 블랙코미디 같은 일은 군대를 지나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나 역시 군대·학교·직장의 누군가에게는 '가해가자 된 피해자'? 아니 '괴물'이었을까?

# 노동조합(勞動組合)은 노동자들이 회사의 불합리한 대우에 대처하고 적법한 이익을 누리기 위해 결성한 단체를 말한다. 하지만 그랬던 대한민국의 노조는 이제 '귀족노조'라는 '멸칭'으로 불릴 때가 더 많다. 왜 그럴까.

임금인상은 물론, 기득권 지키기를 위한 파업과 집회·시위에는 적극적이지만 비정규직과 청년 등 노동 약자의 처우개선에는 소극적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같은 힘없는 일반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있어서?

대화는 없이 파업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기에?

회사 사정은 나락으로 가지만 무조건적인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 복지에 대한 상승을 요구하고 있어서?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고 자신들만의 이익에만 움직이는 모습이 2022년 대한민국 귀족노조의 실상이다. 사람들은 그런 노조를 더 이상 지지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약자가 아니다. 그 자체의 거대한 괴물이 되서 우리사회를 그들만의 세상으로 바꾸려 한다.

# "100명도 되지 않는 파업 참가자가 1만1000여명에 달하는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사 직원의 생계를 위협한다. 아니, 1만여 명이 넘는 원청 업체 직원, 8만여 명에 달하는 부품 협력사 종사자까지 구석으로 몰아넣는 중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사내도급협의회장이 한 말이다.

이들 하청노조는 지난달 2일부터 경남 거제 옥포조선소의 5개 도크 중 가장 큰 제1도크를 점거한 채 건조 작업을 막고 있다.

회사는 하청지회 파업으로 인해 6월 말까지 총 2894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했는데 파업이 7월 말, 8월 말까지 이어질 경우 손실액은 각각 8165억원, 1조359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도 내다봤다.

대우조선해양과 어떻게든 얽히고설킨 중소기업 대표들은 무리한 파업으로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생활 기반이 없어지지 않을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 회사의 사내 협력업체는 총 113곳인데 이미 6월 30일 일부업체가 폐업했으며, 8월에도 폐업을 할 예정이다. 폐업하는 업체들은 노조 파업 장기화를 폐업의 결정적 원인으로 지목 중이다.

성실히 일하는 회사 대표들과 직원들. 또 그 가족들, 그들과 공생하는 지역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한국영화 속 주인공의 지인이 했던 말이 뇌리를 때린다.

"우리 사람은 못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가해가자 된 피해자들이여…제발, 제발, 제발 괴물로부터 벗어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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