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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헤어질 결심’은 논쟁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칼럼]‘헤어질 결심’은 논쟁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기사승인 2022. 08. 0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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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칸영화제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메시지가 배제된 순수한 멜로를 찍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말이 지독한 농담으로 들린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멜로 장르와 잘 어울리는 표현을 꼽으면 아마도 '지독한 사랑'일 게다. 사랑할수록 치명적인 상대에게 중독되고, 헤어나기 어렵기에 마침내 파괴되고 마는, 절망에 방점이 찍혀있는 장르가 멜로드라마다. 그런데 주인공들을 그런 상황에 빠지게 하는 사회·문화적 장애가 무엇인지 드러난다는 점에서 멜로는 정치적이다.

헤어질 결심에서 제3의 요소로서 주인공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에 있지 않다. 그것은 바로 진실과 내면의 양심이다. 본의 아니게 범죄자인 연인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준 형사 해준은 붕괴(?)된다. 해준이 떠나며 마지막으로 한 말에서 그의 진심을 확인한 서래는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나 운명은 얄궂게도 서로에 대한 감정을 반복하게 한다. 이로써 해준은 그녀를 사랑한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되지만, 서래는 사랑하는 이에게 짐이 될 수 없기에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인 방식으로 그녀는 그의 미결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제 경찰 해준에게 남겨진 유일한 임무는 신발끈을 질끈 동여매고 그녀를 찾는 것이다. 그녀는 은폐된 진실에 대한 은유다.

한편 헤어질 결심은 법조계를 풍자한다. 예를 들어 중국인인 서래가 한국어를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를 취조하는 과정 중에 어려운 법률용어 대신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하는 반면, 그녀의 번역체말투는 수사에 혼선을 야기한다. 온갖 현란한 언어로 어떤 행위가 죄가 되기도 하고 죄가 되지 않기도 하는 일들을 빈번히 보아온 터라, 우리에게 그녀는 낯설게도 포획되지 않는 존재로 비춰진다. 영화에서 사실 서래는 한국어를 잘한다. 문자를 해준보다 빨리 그리고 완벽한 문장으로 보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인데, 그녀는 한국말을 어색해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어려운 법조 용어에 휘둘리지 않고 어울리지 않은 구문을 사용함으로써 진실 규명에 혼선을 야기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진실을 비트는 버그다.

흥미로운 또 하나의 영화적 장치는 시점 쇼트다. 죽은 남편의 시점, 죽은 생선의 시점 그리고 핸드폰의 시점 등 다양한 변주를 이루며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피해자인 죽은 남편의 시점이 담고 있는 진실은 가해자가 자신의 아내인 서래라는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형사 해준은 그가 마지막으로 본 가해자가 누구인지 찾고자 한다. 그다음 죽은 생선의 시선으로 보이는 등장인물은 해준의 아내 정안인데, 그녀는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다. 어쩌면 그녀가 물고기의 죽음과 연관된 존재라는 뉘앙스로 읽힌다. 그렇게 죽어가는 존재가 마침내(?) 밝히고자 하는 진실은 가해자들과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이라는 무생물적 존재의 시점 쇼트 또한 이 속에 진실이 담겨 있다는 간절한 눈빛으로 보인다.

연장선에서 유독 핸드폰 잠금장치를 푸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이유 또한 진실과 연관되어 있다. 첫 번째 서래 남편의 핸드폰은 안드로이드 폰으로 쉽게 패턴이 풀린다. 하지만 서래의 아이폰 비밀번호는 엄마의 사망일에 맞춰 있기에 유추가 어렵다. 하지만 유능한 형사인 해준은 특유의 눈썰미로 그것을 풀어낸다. 그리고 극 중 철썩이라는 인물 또한 죽은 엄마의 핸드폰을 태우며 하늘나라에 가서도 전화하라고 말한다. 이러한 반복적 이미지를 통해 현대인에게 진실은 스마트폰에 담겨있다고 이야기한다. 왕왕 특별한 피의자들이 꼿꼿한 자세로 핸드폰 잠금장치를 풀지 않는 이유와 맥락이 닿아있다. 때론 진실이 공교롭게도 단일한 대오에 의해 은폐되곤 하지만, 역사라는 강물이 산에서 바다로 흘러들어 파도로 다시 밀려오면, 진실 역시 안개가 걷히듯 마침내 밝혀지기 마련이다.

헤어질 결심 역시 논쟁적인 작품이어야 한다. 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지독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어야 하는 작품이라는 주장이다. 아마도 감독은 멜로라는 장르를 빌어 반어적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그려내고 있지는 않나 싶다. 적어도 필자가 보아온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은 그랬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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