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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흔들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칼럼] 흔들리는 중대재해처벌법

기사승인 2022. 08. 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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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렬 서울시 시설안전과 안전점검팀장
윤홍렬 서울시 중대재해예방과 시설안전관리팀장
안전에 관한 요즘의 화두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법법'이라고 한다.)이 아닌가 한다. 그만큼 이 법은 사망자가 한 명이라도 발생될 경우,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영 책임자의 처벌(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다루고 있어 모든 산업 분야의 관심거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법의 목적은 각 사업장에서 최고 책임자가 노동자의 위험을 예방하는 데 관심을 갖게 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방보다는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경영책임자·행정기관의 장·공공기관의 장 등의 처벌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책임 한계가 포괄적이고 불명확하게 구성되어 있다. 잘 만든 법이란 보는 시각에 따라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노동계에서는 이 법이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의무와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선제적 안전 보건에 투자하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엄벌주의를 도입하지 않고서도 산재예방 선진국의 위치에 있는 국가들과 한국은 문화적 차이가 있으며, 경영권에서 주장하듯 엄벌주의로 산업 재해를 줄일 수 없다는 논리는 "경영책임자가 강력한 권한을 가진 한국 기업의 특수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라며 외치고 있다. 게다가 5인 미만의 사업장은 이 법을 적용받지 않지만, 실상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 여건이 매우 열악하고 사고 발생이 빈번하다며 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태는 영국의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다. 이 법을 시행한 영국의 경우에도 산재 감소 효과가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다. 강력한 규제와 처벌은 일시적인 효가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으나, 산업 재해의 감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통계치는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건설 현장 사망 사고는 오히려 법 시행 전보다도 늘어났다. 재해 발생의 빈도는 이를 규율할 법의 존재 유무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산업 종사자들의 인식이 어떠한가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란 강력한 법이 생겨난 것도 경영책임자의 안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켜 산업 재해를 줄이고자 하는 시도라고 하겠다.

◇ 중대재해처벌법의 향방을 제시하자.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시행으로 경영책임자의 인식이 정말로 바뀌어졌나를 살펴보자. 기업뿐만 아니라 관공서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대비하여 꽤나 많은 준비를 했다. 서울시의 경우 안전총괄부서와 노동정책부서에 중대재해 예방 담당 팀을 편제하고, 직원들에게 중대재해 감소 방안을 공모하는 등 진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이 시행된 지 몇 개월 간의 상황을 보면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재해 예방에서 안전 관리자 확대가 중요하다고 모두들 입을 모으지만 현장에서는 별로 확대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3월에 동국제강에서 발생한 안전벨트에 의한 사망 사고에서도 안전 관리자가 현장에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건설사의 경우, 경영 최고 책임자를 위해 별도로 안전 책임자를 선임(다만, 고용노동부는 경영책임자에 준하는 안전 책임자를 선임했다고 해서 경영책임자의 의무가 면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하여 법률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영업 정지 처분조차 집행 정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하여 법의 칼날을 피해 갔다.

물론 겨우 몇 달간의 결과를 놓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이 법의 시행으로 산업 재해가 획기적으로 감소되려면 무엇보다도 각 구성원의 의식 변화가 필수적 요소다. 여기저기서 야단치고 들썩여서 단기적인 효과를 보자는 것이 이 법의 취지는 아닐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산업 재해의 감소를 바란다면 각 사업장마다 성숙한 안전 문화가 정착되고 경영 책임자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재해 감소를 위해 각 현장마다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예방활동이 중요하고, 안전에 관한 경영책임자의 관심과 지원 또한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각 사업장의 태도와 관행이 안전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성숙한 안전 문화가 정착되고 재해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안전은 억지로 시킨다고 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스스로 위험을 느껴 안전모를 쓰기보다는 같은 작업 공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무서워 안전모를 쓰기 마련이다. 사회적 환경과 분위기 그리고 국민적 합의는 그런 식으로 발전되어 우리의 안전 그래프를 상승 곡선으로 그리게 할 것이다.

벌써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목적이 제대로 구현되기도 전에, 처벌 위주로 된 조항을 개정하여 안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바람이 일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는 대표이사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경감하거나 면제를 요구하고, 하청업체에 대한 의무 범위를 축소시켜 달라는 제안서를 고용노동부 등 6개 부처에 제출했다. 제안서가 제출되자, 노동계에서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생명권마저 부정하는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격분하고 있다. 입법 동기는 누구나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나치게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법 조항은 개선하여 처벌과 사고 발생 간의 인과 관계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담긴 강력한 처벌 규정이 위헌 논쟁에 휩싸이기 쉽다.

산업 재해를 줄이기 위해 시스템 개발과 장비 도입 등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는 업체에게는 인센티브도 주어져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사회 안전장치가 기업들로 하여금 적절한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게 하여, 그 열매가 위험하고 열악한 근로 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고 발생에 따른 처벌을 강화하기보다는 매년 실시되는 집중안전점검 등 예방 조치로 유해?위험 요인을 사전에 발굴하여 실질적인 산재 감소가 이루어지도록 산업 현장에서의 안전망을 확고히 구축해야겠다.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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