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오늘, 이 재판!] “피해자 진술 의심스럽다”며 성추행 가해자 무죄 선고한 하급심…대법 “잘못된 통념”

[오늘, 이 재판!] “피해자 진술 의심스럽다”며 성추행 가해자 무죄 선고한 하급심…대법 “잘못된 통념”

기사승인 2022. 09. 18. 11:32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항소심서 '강제추행 혐의' 무죄 받은 70대…상고심, 파기환송
1심은 "피해자 진술 일관되고 구체적"→2심 "진술 일관성 없어" 뒤집어
상고심 "피해자 반응 통상적일 수 있어…논리와 경험칙 따라 판단해야"
대법원1
/박성일 기자
성추행을 당한 전후로 피해자가 '의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며 피해자 진술을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은 "잘못된 통념에 의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는 성폭력 사건 특성상 피해자 진술의 진위 판단이 관건이라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의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70)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8일 밝혔다.

재판부는 항소심 판결에 대해 "(원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통념에 따라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합리성을 부정한 것"이라며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증거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19년 1월 채팅앱을 통해 피해자 B(30)씨를 만나 자신을 전직 국가대표 감독이라고 소개하고, "여기는 너무 춥다.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데 감독인 나를 믿어라. 손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테다"며 모텔로 데려갔다.

하지만 A씨는 B씨와 모텔방으로 간 후 '생활비 등에 보태라'며 일방적으로 피해자 가방에 현금 50만원을 넣어주곤 강제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A씨는 "합의에 의한 신체접촉만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는 점 등을 들어 진술 신빙성을 인정했고,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B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고 보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B씨가 모텔에 가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사건 이후에도 A씨의 차량에 탑승해 이동했다는 점을 무죄 선고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의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고 봤다. 사건 전후 A, B씨가 주고받은 메시지, 사건 이후 B씨가 친구와 주고받은 메시지, B씨가 사건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점 등이 피해자 진술과 부합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법원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 가해자와 관계를 유지하거나 가해자에 대해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했어도 그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거부할 수 있고, 사건 이후에도 명확한 판단이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을 구체화해 정리·제시하는 한편 피해자 특정 반응들이 통상적일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시(설명)했다"면서 "피해자 진술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춰 합리적인지 여부는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기초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구체화해 판시했다"며 의의를 설명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