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봉행된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진혼제에서 최종수 성균관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제공=전주최씨 대종중
'연해주 항일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최재형 선생 부부의 국내 합장을 계기로 부부를 추모하는 진혼제가 지난 23일 전주최씨 대종중 평도공 종중 주관으로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서 봉행됐다.
이날 진혼제는 최종훈 결성공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최종억 전주최씨 후원회장이 경과보고를 통해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에 후원한 내용을 보고했다. 또 현재 찾을 수 없는 최재형 선생의 유해를 찾기 위한 추후 계획도 발표했다.
이날 진혼제에서 후손 대표로 전주최씨 판윤공 29세 손인 최종수 성균관장과 전주최씨 지평공파 28세 손 최지영 동북아외교안보포럼 이사장이 축사를 했다.
최 성균관장은 최재형 선생의 독립운동가로서의 업적을 기렸고, 최 이사장은 "지금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 페치카(벽난로를 뜻하는 러시아어)'로 불리던 최재형 선생과 같이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작헌례의 집례관은 최종형 평도공전례위원장이, 초헌관은 최종수 성균관관장(판윤공)이, 아헌관은 최종진 경절공회장이, 종헌관은 최종식 감무공회장이, 축관은 최이남 평동공감사가 각각 맡았다. 최승규 평도공감사는 추도사를 했다.
최재형 선생은 자수성가해 축적한 부를 항일독립투쟁을 지원하는데 바쳤다. 특히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의거를 지원한 것은 물론 안 의사 순국 이후에도 안 의사의 유족들을 보살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최재형 선생은 이후 1920년 4월 7일 연해주 4월 참변으로 순국했다. 정부는 최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최재형 선생의 묘는 가짜 유족 사건으로 멸실 돼 빈터로 남아있었으나 최근 전주최씨 평도공 22세 손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국가보훈부가 국립묘지법을 개정함에 따라 제78주년 광복절 하루 전날인 지난 8월 14일 최 선생의 순국지 인근의 흙과 부인 최엘레나 여사의 유해를 봉환해 국립서울현충원에 합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