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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이 그린 ‘무자원 산유국’ 꿈…아들 최태원이 이뤘다

최종현이 그린 ‘무자원 산유국’ 꿈…아들 최태원이 이뤘다

기사승인 2023. 09. 2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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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에서 대한민국 최초 해외유전개발 성공
국제유가 급등락에도 40년 이어온 SK그룹 의지
정부도 손 놓은 해외자원개발에 민간기업 쾌거
재계에선 잊혀진 ‘기업가정신 부활’ 호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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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사진 앞줄 왼쪽 첫번째)이 1981년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앞줄 두번째)를 접견하고 있다. /SK그룹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를 산유국으로.' 1970~80년대 글로벌 오일쇼크를 계기로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키우겠다는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해외유전개발 숙원이 40년만에 아들 최태원 회장의 대에서 이뤄졌다. SK어스온이 우리나라 최초로 남중국해 해상광구에서 탐사부터 시추에 이르는 원유 생산 전단계를 독자적 으로 성공시키면서다.

25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이날 국제 원유시장에서 두바이유는 배럴당 93달러를 돌파했다. 불과 6~7년새 산유국간 치킨게임으로 배럴당 20달러대의 '초저유가' 시대를 맞이하더니, 다시 10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가 예고되며 나날이 상승세를 타는 중이다.

SK가 자원 개발 꿈을 품고 달린지 약 40년, 국제유가는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급등락을 반복했고 비전에 대한 명암도 엇갈렸다. 심지어 정부 마저 포기한 해외유전개발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건 꺾이지 않은 SK그룹 부자(父子)간 의지의 결실이라는 평가가 재계에서 나온다.

1970년대 직물사업에 집중하던 최종현 선대회장은 제1·2차 오일쇼크가 세계 경제를 어떻게 뒤흔드는지 지켜보며 석유사업에 대한 꿈을 품었다. 당시 최 선대회장은 백방으로 뛰어 다니며 한국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출금지를 풀어내고 하루 5만 배럴의 석유를 한국에 공급하는데 중요한 민간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다.

그렇게 오일쇼크를 방어해 내던 1980년 12월 최 선대회장은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 SK의 전신 ㈜선경은 국내 최대 정유 공기업인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이노베이션)의 지분 50%를 미국 걸프사로부터 인수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을 일으킨 정주영 창업회장의 꿈인 '쇳물부터 자동차까지'가 현대제철을 세우며 해소 됐다면, 최종현 선대회장의 꿈인 '섬유부터 석유까지'는 이때 이뤄졌다.

유공 인수 직후 최 선대회장은 자원기획실을 설치해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를 산유국으로 만들어 '에너지 안보'에 대응하겠다는 보국 청사진이 처음 그려진 게 이때다.

해외자원개발은 정부마저 손 놓은 사업 중 하나다. 2018년 정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한 해외자원개발 실패의 이유를 물어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한 자원공기업 통폐합 시도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의 신자원개발 정책의 핵심은 관련 사업을 최대한 민간에 이양하자는 게 골자였고 그 중심에 있는 기업이 포스코와 바로 SK다. 포스코가 가스와 광물에서 성과를 냈다면, 원유 개발에선 드디어 SK가 빛을 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SK그룹은 그간 인도네시아·아프리카 광구 개발에 참여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고, 결국 회의론이 번졌지만 최태원 회장은 SK이노베이션의 E&P(석유개발) 사업에 대해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2021년 물적분할해 SK어스온을 차리면서 재차 드라이브를 걸은 바 있다.

일각에선 잃었던 대한민국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는 계기가 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SK의 해외유전개발 성공은 목표를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기업인의 덕목이 우리나라 재계 창업주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사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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