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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과 디플레이션 우려

[칼럼] 한은의 기준금리 동결과 디플레이션 우려

기사승인 2020. 07. 2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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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엄청나게 돈을 풀고 있는데 왜 물가는 별로 오르지 않는가?” 엄밀하게 말하면 소비자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을 뿐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오르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물가는 2009년에서 2019년 동안 연평균 2%도 오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을 지적하면서 돈이 풀려도 물가에 대한 압력이 별로 높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디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적극적으로 풀어야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돈을 풀어도 모든 재화의 가격들이 비례적으로 상승하는 게 아니라는 것, 즉 인플레이션은 “비례적이지 않다는(uneven)” 사실만 추론해보면 이런 의문은 풀리고 이런 주장에 대한 대답도 분명해진다.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내려 늘어난 통화가 은행권에 들어가면, 이를 대출받은 사람들이 어떤 재화에 돈을 쓰느냐에 따라 재화들의 가격 상승의 폭이 달라진다. 또 늘어난 통화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획득해서 전반적으로 물가가 오르기 이전에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물가가 오른 이후 이를 획득하는 사람들에 비해 유리하다. 모든 사람의 지갑에 돈이 똑같은 비율로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모든 재화에 돈을 고루 쓰는 게 아니다. 마치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듯이’ 돈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연못의 몇 개 지점들에서 먹물을 풀어놓듯이 통화가 늘어나 퍼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소비재의 공급 능력에 비해 수요가 줄어든 효과를 낸다. 그래서 풀린 돈이 소비재 수요의 증가가 아니라 주로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로 나타나거나 부동자금화되고 있다. 이런 부동자금화란 달리 말해 경기침체로 현금을 축적하려는 유인이 높아진 현상을 말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이 잘 되지 않아서 채무 이행이 어려워진 사업체들이 많아지면, 언제든지 자신도 받을 돈을 제 때 받지 못해 부도를 낼 위험이 높아진다. 그만큼 현금(유동성) 확보 필요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통화를 증발해도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고로 되돌아오거나 금고에 현금으로 쌓인다. 이런 현금 축적 수요가 강할수록 풀린 돈이 모두 재화의 구매로 사용되지 않아서 물가압력은 약해진다.

이렇게 부동화한 자금은 부도위험이 낮아지거나 금리가 지나치게 낮아져서 이 자금이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몰리게 되면 그 돈이 몰리는 재화(이 경우에는 자산)의 가격을 급등시킬 것이다. 코로나19로 소비생활이 여의치 않는 상황에서 돈이 더 풀린다고 해서 이 돈이 소비재의 가격을 올릴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은이 최근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금 기준금리가 경기침체를 부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어 제로 퍼센트대에서 형성되고 있지만, 이자율은 원래 소비자들의 저축의 정도와 투자자들의 투자의 정도를 일치시키는 가격으로 기능한다. 투자하려는 투자량은 큰데 실제 저축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시장이자율이 올라서 저축을 늘리도록 유인한다.

그러나 현재 0%대의 기준금리는 그런 저축이 넘쳐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낮춘 금리여서 일종의 착시를 일으키고 있다. 다시 말해 미래의 가용자원이 지금보다 엄청나게 풍부해야 비로소 수익성이 있을 사업이 수익성이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언젠가 터질 거품이 경제에 형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은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혼란을 덜 겪으면서 경제주체들의 실제 저축의사에 부합하는 상태로 잘 돌아갈 것인가 이다. 그런 점에서 한은의 최근 기준금리 동결은 최소한 착시를 확대시키지 않았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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