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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시정치’가 필요한 계절이 돌아와

[칼럼] ‘미시정치’가 필요한 계절이 돌아와

기사승인 2021. 08. 0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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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비록 어떤 정책이 시행되기만 하면 대다수가 바라던 효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자발적 지지를 얻지 못하면, 그 정책은 실행도 해보지 못한 채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끝나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떤 정책이 성공하려면, 그 정책의 배경을 이루는 이론적, 사상적 혹은 철학적 투쟁 못잖게 이를 실제로 성공시킬 ‘미시정치’가 필요하다. 이것이 ‘애덤 스미스 연구소’ 패슨 피리(Madsen Pirie) 소장이 쓴 《미시정치》(Micropolitics)의 요지다.

갑자기 ‘미시정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지금 내년도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을 위한 각종 아이디어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중 상당수는 단기적으로 국민에게 달콤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힘들 게 만들 소위 ‘포퓰리즘’ 공약들도 포함되어 있다. 정말 국민을 위할 정책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미시정치’에 대한 고민을 지금부터 해야 나중에 정권을 잡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정치가 자신은 개인적 이득이 아니라 정말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펼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고 하더라도 정책에 영향을 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정책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여부에 따라 행동한다고 가정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 피리 박사의 조언이다. 그에 따르면 1970년 영국의 히스 정부와 1979년 대처 정부가 공공부문 개혁들을 추진했던 이유는 대동소이했지만 ‘미시정치’ 기법을 잘 활용했던 대처 정부만 성공할 수 있었다.

구체적 예를 들어보자. 지금 우리나라는 공공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현재 득세하고 있지만, 1960~70년대 당시 영국에서는 공공부문 소유 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전체 세입자의 35%로 정부로부터 임대료 보조를 받았는데, 평균소득 이상의 공공주택 세입자도 다수였다고 한다. 더구나 임대료 보조에 더해 공공주택 유지비가 막대한 재정 부담이 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

그래서 히스 정부는 공공주택 임대료 인상 정책을 시도했지만, 공공주택 세입자들뿐만 아니라 공공주택 세입자 대기자들도 거세게 반발했다. 공공부문의 많은 것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용은 분산해서 부담되지만 혜택은 일부에 집중되는 것(dispersed costs and concentrated benefits)인데, 이 집중된 이익을 보는 이들이 강력하게 반발할 때 비용을 부담하는 다수의 의견이 꺾이는 것이 보통이다.

영국에서 공공주택 임대 대기자들이 반발한 것을 보면, 현재 한국에서 아파트 상한가 규제가 신규 아파트 분양을 ‘로또’로 만들고 있어 문제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폐지할 경우 닥칠 반발을 예상해볼 수 있다.

아무튼 영국 대처정부는 ‘미시정치’ 기법을 받아들여 공공주택 세입자들에게 임대료 보조에 비해 훨씬 매력적인 공공주택 구매권을 제시했는데 흥미로운 것은 공공주택 세입자들이 이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는 점이다. 그 결과 대다수 공공주택이 세입자들의 자가 소유로 변했고 정부는 임대료 보조와 공공주택의 관리를 위한 재정을 더 이상 부담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정치 훈수꾼들이 새 정부가 정권을 잡으면 힘이 있을 초창기에 정책을 밀어붙이라는 충고를 하는 것을 본다. 아마도 힘이 빠진 임기 말에 추진하는 것보다는 임기 초에 추진할 필요성 자체는 맞는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영국의 히스 정부는 이런 충고에 따라 공공주택 임대료를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미시정치’적 기법들을 동원했을 때 성공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공공주택 문제뿐만 아니라 소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공공부문의 개혁에 모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학자가 이론을 제공하고 공학자가 이 이론을 바탕으로 기계를 만들 듯이 각종 이론과 사상은 미시정치라는 도구를 잘 활용할수록 현실 정치에 적용될 수 있다. 개혁과 변화를 제시할 예정인 모든 여야 대선주자들이 이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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