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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동 칼럼] 신도시 투기판, 차별적 보상 검토해 볼만

[장용동 칼럼] 신도시 투기판, 차별적 보상 검토해 볼만

기사승인 2021. 03.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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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동 대기자1
부동산은 물론 도시, 주택에 있어서 1989년 4월 27일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수도권 첫 신도시인 분당을 비롯해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5개 신도시건설 계획 발표와 함께 해당 지역별로 대대적인 토지수용작전(?)이 개시된 바로 그날이다. 당시 압권은 바로 신도시 지정된 지역 전체를 모두 철조망을 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어 현지를 감시 관리하는 인력이 별도로 파견되고 분당은 성남 상대원동 고갯마루, 일산은 고양군청에 신도시기획단이 상주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신도시 건설지역은 경계 안팎을 불문하고 막대한 투기를 불러왔고 당시 투기단속 합동수사본부의 적발자만 공무원 130명을 포함 총 1만3000명에 달했을 정도다.

1970년대 개발 부흥기에 창원, 반월 등지에서 공단을 중심으로 한 공단 신도시를 건설한 적은 있으나 수백만 평균 모의 도시급 거주 타운을 건설하는 게 당시가 처음이다. 따라서 토지·지장물의 평가, 보상 등에 미비한 게 한 둘이 아니었다. 시행 주체인 한국토지공사 역시 토지금고 정도의 역할을 했을 뿐 대규모 신도시건설 경험이 전혀 없었고 법규나 제도 등도 미비했던 게 사실이다. 지금은 우리의 개발·평가, 보상 경험을 몽골 등지에서 수출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당시 보상체계는 물론 토지이용계획, 택지공급·아파트 분양방식, 이주자택지·원주민 보상 등의 제도가 엉성하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권력과 힘을 통하거나 심지어 물리적 시위까지 벌여서 막대한 제대로 챙겨가는 게 흔한 일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개발정보였다. 이 과정에서 중간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고 이로 인해 공공개발 보상은 이른바 복마전이 되고 말았다. 공공개발은 공공의 이익보다는 역설적으로 불법 부 축적의 원흉이었고 투기의 발원지이자 온상이 된 것이다.

특히 공공개발지 투기는 공무원과 공기업 임직원들이 시동을 걸고 여기에 매개체 역할을 하는 기획부동산들이 춤을 추는 격이었다. 개발지마다 도면 유출 문제가 거론되지 않은 적이 없고 직간접 투기로 쑥대밭이 되기 일쑤였다.

특별히 신도시 투기가 극성을 부린 이유는 인구 유입이 많아 땅값 상승률이 높고 토지 보상 외에 이주자택지를 비롯해 영업보상 상업 용지, 입주권 등 다양한 먹거리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개발지 내 토지에 나무, 주택 등 지장물이 있으면 추가로 보상금이 많아지고 단독용지 등 보상용 토지를 시세 절반 가격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어 막대한 불로소득을 거머쥘 수 있게 된다.

우선 원주민과 투기적 매입자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미 200여 곳에 달하는 수도권 개발 예정지 기초조사는 데이터베이스(DB)화되어 있는 만큼 개발 주체들의 법적 규제만으로 대리 투기를 막을 수는 없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관계자 외에 협의 과정에서 정보를 얻는 지자체 관계자들의 정보 접근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원소유자 중심으로 이를 DB화해 관리하는 게 절대 필요하다.

아울러 개발계획의 치밀한 관리와 정책의 세심함도 적극적으로 고려한다. 3기 신도시를 응급처방식으로 발표하다 보니 투기 세력에 여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부동산 정책은 치밀함과 엄격함이 우선이다. 25번에 달하는 부동산 대책이 바로 설익은 대책, 비시장적 대책의 표상이다. 학계 등 부동산 전문가들조차 정부 대책 성안에 누가 참여했는지 궁금해할 정도다. 시장이 한 발 더 먼저 가는 상황에서 부실한 1970년대식 강성공포 대책으로 이를 절대 제어할 수 없다. 수용, 평가, 보상에 관한 제도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되 시기나 물건별로 보상을 차등화하고 기준시점, 면적 등에 대해 더 면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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