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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칼럼] 군대문화 ‘작은 것부터’ 변화 기대한다

[전인범 칼럼] 군대문화 ‘작은 것부터’ 변화 기대한다

기사승인 2020. 04. 2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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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현 특수·지상작전 연구회 고문
군대문화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해자 생겨
전투력 집중할 수 있는 근무여건이 선진군대
전인범 장군 1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전 유엔사 군정위 수석대표
서울 용산에서 근무하는 미군 부대 모 중령의 관용차 사용에 관한 얘기이다. 그가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에 있는 부대에 용무가 있어 출장을 갈 때 부대의 관용차를 배차 신청해서 직접 운전으로 가려면 일단 본인이 차가 대기하고 있는 수송부로 직접 가야 한다. 본인의 사무실에서 수송부까지는 통상 걸어가거나 택시를 타거나 동료에게 태워 달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한국군과 같다)

그런데 배차된 관용차는 수송부에서 용무가 있는 부대나 사무실이 위치한 장소까지만 사용한다. 만일 중간에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 위해서 식당에 들리거나 또는 편의점에서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들리면 공용물 유용으로 처벌받게 된다. 심한 경우에는(또는 계급이 높은 경우에는) 전역 조치까지 될 수 있다. 요즘 흔한 드라이브 스루 형식의 물건 구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 점심이나 저녁 식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결론적으로 말해 굶거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차를 세워놓고 걸어가거나 택시 혹은 동료의 개인차를 이용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출장을 마친 후 차량 반납 절차도 같다. 그래서 미군들의 경우 이러한 까다로운 사용 조건 때문에 관용차를 배차내어 쓰느니 차라리 개인차를 사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것은 미군의 관용차 사용에 대한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미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군의 간부들에게 이런 정도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어찌보면 현실적이지도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실정에 맞지 않는 너무 과한 조건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까지 규정하는데에는 여러 가지 사회 문화적 배경에서 유래한다. 먼저 생활문화적으로 미국의 경우 예를 들어 가정에서 “여보, 물 좀 갔다 줘” 라던가 학교에서 “ㅇㅇ아, 물 좀 갔다 줘”라고 요구하는 문화가 거의 없다. 또 식당에서 나이가 적거나 하급자가 물을 따라야 한다는 생활 규범도 없다.

◇군대문화 의도하지 않은 피해자·가해자 생겨

그렇다고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 문화에 부탁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습관과는 조금 다르다. 예를 들어 부탁하는 경우에도 ‘플리즈(please)’라는 단어가 꼭 전제된다. “여보, 물 좀 갔다 줄래요?”(Honey, please get me a glass of water) 또는 “ㅇㅇ아, 물 좀 갔다 줄래?”(ㅇㅇ, please get me a glass of water) 같은 것이다. 쉽게 말해 부탁하는 뉘앙스이지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다.

하급자나 친구 간에 잔심부름을 당연하게 여기는 생활문화가 학교나 군에서와 같이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또는 상하관계가 형성돼 있는 조직에서는 자칫 당연한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 쉽다. 일반회사 직장에서는 일종의 ‘갑질’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군에서는 마치 당연한 것인 양 인식돼 의도하지 않은 가해자와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날 수도 있는 문제다.

또 대다수 선진국의 직업 군인은 봉급 수준과 복무 여건이 우리 군인들보다 좋다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통상 우리 보다 1.5배 또는 2배의 봉급을 받고, 세금이 감면된 차량을 구입할 수 있거나 유료세가 할인된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등의 혜택이 있다. 또 독신자 숙소와 관사에는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를 비롯한 주방기구는 모두 갖춰져 있고 최신식이다. 우리 군도 요즘 들어 간부 숙소에 이러한 내부 시설들이 갖춰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소대장과 중대장 등 초급간부들의 생활여건은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부대나 부대원들에게 ‘부탁’하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초급 간부 때부터 이러한 점에 유의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당연한 아랫사람의 역할이 되기 쉽다.

◇전투력 집중할 수 있는 근무여건이 선진군대

종종 군 부대 안에서 일부 지휘관이나 상급자의 적절하지 않은 부대원 동원 또는 사용이 논란이 되곤 한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고급 지휘관들도 공공행사에 사용되는 관사를 직접 청소하고 관리하며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고급 지휘관이 부대 전투력과 부하들에 대한 복지와 훈련에 더 많은 노력과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사에서의 청소와 관리 유지로부터 자유를 줘야 한다. 몸과 마음의 여유를 주도록 해야 하는 것이 더 큰 관점에서 전투력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부터라도 관사 청소는 용역을 줄수 있는 예산을 배당해 지휘관이 부하 복지와 훈련 상태에 관심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종종 발생하는 갑질 문제 해결은 가정과 초등학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족이나 제자나 학생에게 잔심부름 시키는 일종의 무의식적인 버릇을 없애고 당연하게 여기는 생활문화를 일소해야 한다. 군에서는 간부들이 부대 전투력 유지와 관련 없는 여러 가지 잡다한 일거리에 치중하지 않도록 근무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여건이 잘 보장된 나라의 군대가 선진 군대가 될 수 있다.

군에서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몇 가지 군대 생활문화를 되돌아 봐야 한다. 특히 하급자나 직위가 낮은 사람들이 해왔던 행동방식에 대해 상급자들이 당연하게 여겼던 문화적 습관 대신에 하급자의 ‘당연한 예의 갖춤’에 감사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한 감사하는 마음의 크기에 비례해 부하들에 대한 복지 제도와 교육훈련에 매진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진정한 전우애를 키우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생활문화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의 어떤 잘못된 갑질에 해당하는 생활습관에 대해 ‘요즘은 군대도 그렇게 안 한다’는 것이 보편화될 때 생활습관의 변화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먼저 작은 것에서부터 ‘군대문화’의 변화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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