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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칼럼] 김천 사명대사공원 ‘평화의탑’ 야심작

[조향래 칼럼] 김천 사명대사공원 ‘평화의탑’ 야심작

기사승인 2020. 08. 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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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사명대사공원의 41.2m 5층 목탑
김충섭 김천시장 '체류형 관광' 전략적 구심점
현대적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 '힐링'에 최적격
조향래 논설위원 0611
조향래 논설위원
‘물에서 갓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달빛에 젖은 탑이여...’ 승무(僧舞)의 긴 여운과 지조(志操)의 큰 울림을 남긴 청록파 시인 조지훈은 탑(塔)을 관능적인 여인의 몸에 비유를 했다. 소재는 탑이지만 주제는 시의 제목 그대로 ‘여운’(餘韻)이다. 돌아서 먼 산을 바라보는 여인처럼 탑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운을 머금고 있을 따름이다.

하긴 사방 어디에서 본들 탑이란 늘 그 모습이거늘. 그래서 시인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 탑이여’라고 탄식을 했나보다. 그리고 달이 기울어 탑이 어둠 속에 사라져 가는 장면을 ‘여인이 쪽빛 옷감을 입고 검은 숲으로 걸어 간다’고 표현했다. 급기야 희미한 자태에 감기는 바람소리에서만 그 존재를 인식할 따름이다. 달빛에 젖은 탑을 관조하는 시인의 심미적 황홀경이 선경(仙境)인 듯하다.

시인이 다가서려했던 탑의 내밀한 풍경은 결국 심오한 역사적·예술적·불교적 가치이기도 했을 것이다. 경북 김천 사명대사공원의 5층 탑이 10년 가까운 인고와 숙성의 세월을 거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평화의탑’이다. 높이 41.2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이 목탑(木塔)은 사명대사공원의 랜드마크이다. 야경도 아름답지만 시인이 그랬듯 탑이란 달밤에 봐야 제격이다.

경북 김천 사명대사공원의 41.2m 5층 목탑

한국적 정서와 염원을 품은 탑이기 때문이다. 천년고찰 직지사 옆에 있고 사명대사 공원 안에 있는 탑이어서 더 그렇다. 직지사는 호국불교의 상징 인물인 사명대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직지사와 사명대사의 인연은 애틋하고 각별하다. 어린시절 부모를 여의고 열여섯에 직지사로 출가한지 2년 만에 승과에 급제했고 서른의 젊은 나이에 주지의 소임을 맡았다.

금강산에 들어가 서산대사의 제자가 되면서도 수행자의 삶을 멈추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자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의승병을 창의하고 큰 싸움마다 큰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왜국에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조선 백성 수천명을 데리고 돌아오는 애민(愛民)의 행로를 보였다.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명대사공원’이다.

사명대사공원은 직지사와 담장 하나를 경계로 이웃하고 있다. 황악산 자연풍광에 절제된 인공미를 가미한 사명대사공원, 그 속에 자리한 평화의탑 또한 담백한 옻빛이다. 화려한 단청이 아닌 천연 옻칠로 마감한 것은 백자를 낳았던 조선의 미학마저 담고 있다. 이 탑은 경주 황룡사 9층탑을 닮았다. 외형적인 구조만이 아니다. 탑에 어린 호국의 의지와 통일의 꿈도 그렇다.

김충섭 김천시장의 ‘체류형 관광’ 구심점

교교한 달빛이나 은은한 야간조명과 어우러진 5층 목탑의 자태는 유교적 미감과 불교 건축의 진수를 함께 느낄 수 있다. ‘평화의탑’은 그래서 종교적 분별이나 지역적 편견을 넘어 선다. 이곳은 ‘자신(自身)을 만나는 쉼표’다. 옻빛에 어린 가이없는 여운은 평화와 통일의 국민적 비원까지 담아 사뭇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것은 힐링이라는 현대적 여행의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부응이기도 하다.

‘사명대사공원’과 ‘평화의탑’은 김충섭 김천시장의 야심작이다. 체류형 관광의 전략적 구심점이자 원심력이다. 시인이 탑에서 발견한 시원의 생명력은 화합과 원융(圓融)의 상징이기도 하다. 모처럼 쌓아올린 목탑이 신라 황룡사탑이 그랬던 것처럼 동서와 남북으로 갈라진 민심과 국력을 아우르고 통일을 이끌어내는 울림이 되길 바란다. 탑은 그렇게 긴 여운을 드리우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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