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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節氣) 에세이] 망종, 까끄라기 곡식은 익어가고...

[이효성의 절기(節氣) 에세이] 망종, 까끄라기 곡식은 익어가고...

기사승인 2020. 06. 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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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전 방송통신위원장
6월 5·6일 망종, 까끄라기 보리 밀 수확하고 벼 모내기
'농사일 멈추는 것도 잊는다'해서 '망종(忘終)' 부르기도
아이들도 농사일 봄방학...천지 綠陰芳草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절기상 망종(芒種·grain in ear)이 시작되는 날이다. 망종은 까끄라기가 있는 종자를 뜻한다. 이 무렵에 익어 수확하는 보리나 밀, 그리고 이 무렵부터 심기 시작하는 벼가 그 이삭에 까끄라기기 있는 작물들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망종이라는 절기는 보리나 밀은 수확하고 벼는 심기에 적당한 시기인 것이다. 따라서 과거 이모작을 많이 하던 때의 남쪽 지방에서는 망종 어간은 보리 수확과 함께 논에서는 모내기, 밭에서는 콩 심기가 이어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농번기이기도 했다.

망종 어간이 오죽 바빴으면 이 무렵 바쁨을 지칭해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 “별 보고 나가 별 보고 돌아온다”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밭 갈아 콩 심는 / 망종이 오면 / 부뚜막의 부지깽이도 / 콩콩 뛴단다.’(이성희 ‘망종’ 중에서). 망종 때는 ‘농사일이 끊이지 않아 일을 멈추는 것을 잊는다’고 ‘망종(忘終)’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그 바쁜 정도가 짐작이 된다. 옛날에는 이 무렵에 어린 아이들도 농사일을 도우라고 학교에서 봄방학을 하기도 했다.

사실 본격적인 농사일은 춘분 무렵에 밭을 갈고 파종을 하는 일로 시작돼 한로 무렵의 추수 때까지 거의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물론 초여름의 망종과 한가을의 한로 무렵이 특히 더 바쁜 최고의 농번기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한봄부터 한가을까지 전 기간 낮이 긴 만큼 일도 더 많이 해야 하는 농번기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낮이 길고 따뜻한 봄과 여름에 이렇게 많은 시간들을 열심히 땀 흘려 수고한 덕택에 춥고 밤이 긴 겨울을 별 일을 하지 않거나 빈둥거려도 문제 없이 날 수 있다. 겨울이 추위와 시련의 계절임에도 사람들이 비교적 안락하게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은 여름에 부지런히 노력한 덕택이다. 겨울의 안락은 여름의 근면에 대한 보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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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화 한강공원의 다 익은 호밀이 3일 바람에 출렁이며 바쁜 농사철과 싱그러운 여름을 손짓하고 있다. / 사진 =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망종 무렵부터는 나뭇잎이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바뀌고 잎도 거의 다 자라 녹음이 우거진다. 대지는 온갖 풀들이 어우러져 세상은 그야말로 나뭇잎들에 의한 짙은 녹음과 향기를 뿜는 풀들로 뒤덮이는 녹음방초(綠陰芳草)의 시절이 된다. 우리 시야에서 오월의 파릇파릇한 신록의 싱그러움이 사라지는 대신 우리 후각에는 향긋한 풀내음이 가득찬다. 이때부터 늦여름까지 천지는 온통 진초록 잎들에 의한 녹음에 덮이게 된다. 달력상으로는 6월부터 여름으로 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망종 무렵부터는 기온이 꽤 올라 더워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이전까지 덮던 두터운 이불 대신 아주 얇은 이불이나 처네를 덮어야 할 정도로 더운 날씨가 된다. 이 무렵부터 옷도 정장 대신 반팔 셔츠나 반바지로 갈아 입게 된다.

망종 어간에 채소로는 완두 상추 아욱 우엉 양파 마늘, 과일로는 버찌 앵두 살구 오디 등이 미각에 새로움을 더한다. 이 무렵부터 화단에는 분꽃 봉숭아 백일홍 접시꽃, 뜰이나 담장에는 둥근 공 모양으로 모인 수국, 향기가 좋아 관상수로 많이 심는 백리향 등의 여름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창포와 매발톱꽃 등은 7월까지, 패랭이꽃 메꽃 수련 엉겅퀴 원추리 이질풀 질경이 등은 8월까지 핀다. 들국화의 하나로 통칭되고 자주색 벌개미취꽃도 9월까지 핀다. 샛노란색의 호박꽃은 10월까지 핀다. 야산에서는 밤나무의 가지 끝에 연한 황백색으로 길게 늘어지는 여러 갈래의 수꽃이 다닥다닥 피어 특유의 진한 향기를 풍긴다.

망종일(6월 5·6일)은 흔히 현충일(6월 6일)과 겹치거나 하루 차이 밖에 없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맞췄기 때문이다. 현충일을 망종일에 맞춘 것은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에 따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날수를 따라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한다는 ‘손’이라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에서 청명·한식에는 사초와 성묘를 하고 망종에는 제사를 지내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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