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8월 7일 ‘가을의 길목’ 입추(立秋)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8월 7일 ‘가을의 길목’ 입추(立秋)

기사승인 2020. 08. 07. 07:44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전 방송통신위원장
봄은 마음 속에 먼저 오나, 가을은 감각에 먼저 온다
'입추에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장벼의 철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은 절기상 가을에 들어선다는 ‘가을의 길목’ 입추(立秋·start of autumn)가 시작되는 날이다. 말할 것도 없이 아직은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때인데 무슨 가을의 길목이냐고 의아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추일은 태양이 한여름인 하지(夏至)와 한가을인 추분(秋分)의 중간 지점에서 추분 쪽으로 향하는 시점이라 절기력은 입추를 가을의 시작일로 본다. 물론 입추 무렵은 아직 무더위가 한창인 때다.

입추는 실제 날씨로 보면 대서(大暑) 무더위의 맹위가 이어지는 계절이다. 그래서 초반은 두보(杜甫)의 표현처럼 “관복의 띠를 매니 발광해 큰 소리로 외치고 싶다”고 할 만큼 무더운 때로 여름휴가의 성수기에 속한다. 하지만 무더위의 절정인 대서 절기 끝 무렵부터 이미 여름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일기도 하면서 가을의 길목으로 들어선다. 혹한의 절정 직후에 따스한 봄기운이 스며들듯, 무더위의 절정 직후에 서늘한 가을 기운이 감돈다.

봄은 마음 속에 오나, 가을은 감각에 온다

봄은 우리 마음 속에 먼저 오나 가을은 우리의 감각에 먼저 온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는 ‘서풍부(西風賦)’에서의 셸리(Shelley)의 말처럼 우리는 겨울을 맞으면서 이미 봄을 기다린다. 하지만 우리는 여름을 맞으면서 가을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더위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 어느덧 한여름에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게 되고 느끼지 못하던 바람결을 체감한다. 가을이 오는 것을 직감한다. 이처럼 가을은 감각으로 먼저 온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맨 먼저 감지하는 감각은 신선한 바람을 느끼는 촉각이다. 하지만 바람으로 느끼는 가을의 내도(來到)는 좀 애매하다. 아무래도 가을의 내도를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감각은 역시 시각과 청각이다. 우리의 시각에 포착되는 가을의 전령사는 이슬방울들이다. 입추 즈음부터 밤이나 새벽에는 일교차가 커지면서 풀잎에 이슬이 맺혀 해 뜨기 전 이른 아침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절기에세이 입추 매미
서울 가양동 벗나무 위의 참매미가 6일 여름이 가는 것이 아쉬운 듯 요란한 울음 소리를 내고 있다. 매미 소리가 사그라들면 처량한 귀뚜리미 소리가 가을을 부른다. / 사진=이효성 자문위원장
우리의 청각에 포착된 가을의 전령사는 귀뚜라미 소리다. 입추 무렵부터 ‘알기는 칠월(양력 8월) 귀뚜라미’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귀뚜라미가 우는 청아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사실 입추 어간에 나무에서는 매미들이, 그리고 풀밭에서는 풀벌레들이 가장 요란하게 운다. 이들 벌레 소리는 실은 더위가 가기 전에 짝을 찾으려고 필사적으로 내는 구애(求愛)의 아우성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징조다.

‘입추에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입추 녘부터 해바라기와 물봉선이 9월까지, 그리고 용담과 참취는 10월까지 꽃을 피운다. 이 즈음 농촌에서는 일찍 익은 고추들을 말리기 위해 멍석이나 지붕 위에 널리기 시작한다. 참깨와 옥수수를 수확하고, 이들을 수확한 밭에는 김장용 무, 배추처럼 가을채소를 심기 시작한다. ‘가을채소는 입추 이슬을 맞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가을채소가 제대로 자라려면 일교차가 커져 이슬이 맺히는 입추 어간에 씨를 뿌려 어린 싹들이 습기를 충분히 취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오늘날 조생종 벼의 품종 개량과 한반도의 아열대화로 남부지방에서는 조생종 벼의 이기작(二期作)을 하기도 한다. 일기작 벼를 추수하고 새로 이기작 벼를 심는 때가 바로 입추 어간이다. 이때 일반 벼들은 눈에 띄게 자라나서 이삭이 될 꽃줄기를 배어 볏대가 불룩해지는 배동바지거나 꽃줄기가 막 열리려는 장벼의 철이다. ‘입추에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이 시기에 태풍과 장마도 잦아 벼에 많은 피해를 준다. 우리 조상들은 이 무렵 비가 닷새만 계속와도 조정(朝廷)이나 각 고을에서 비를 그치고 맑은 날이 계속되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