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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추분, 밤낮의 길이가 같음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추분, 밤낮의 길이가 같음

기사승인 2020. 09. 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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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자문위원장,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9월 22일)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가을의 균분점이며 천문학적으로 가을의 시작점인 추분(秋分·autumnal equinox)일이다. 밤낮이 같은 봄의 균분점인 춘분 때 천구 상의 적도에 있던 태양이 계속 북상하여 하지 때 갈 수 있는 최북단인 북회귀선까지 갔다가 남하하기 시작하여 다시 적도 위에 위치하게 되면서 밤낮의 길이도 다시 같아진 것이다. 오늘부터 태양이 남하하여 동지 때 천구 상 갈 수 있는 최남단인 남회귀선까지 갔다가 다시 북상한다. 그래서 오늘부터 밤이 낮보다 조금씩 더 길어지기 시작하여 동지 때 밤이 가장 길고 이후 밤이 조금씩 짧아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밤낮이 다시 같아지는 내년 춘분 때까지는 밤이 낮보다 더 길다.

추분은 춘분으로부터 천구(天球) 상에서 도수로는 180도 돈 지점이지만 날수로는 1년 365일의 반인 182.5일이 아니라 186일이다. 이는 이 구간에서 지구의 공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대로 추분에서 춘분까지의 구간에서 지구의 공전 속도가 상대적으로 빨라 179일이 걸린다. 그리고 추분이나 춘분은 똑같이 태양이 천구의 적도에 위치하는 때이나 추분은 여름에서 겨울로 가는 길목이고, 춘분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추분 때의 기온이 춘분 때보다 섭씨 약 10도 정도 더 높다. 이날 해는 춘분 때와 마찬가지로 정 동쪽에서 떠서 정 서쪽으로 진다.

추분은 대체로 추석(秋夕)이 드는 때로 따가운 햇살 아래 날씨는 청명하고 바람은 선선한 전형적인 가을 날씨가 펼쳐지는 한가을로 가을의 기본 절기다. 이때부터 맑은 대기에 서늘함이 묻어나고, 하늘은 매우 높푸르러지고, 풀벌레 울음소리는 더욱 처량하게 들리고, 가을 특유의 정서인 까닭모를 우수와 비애의 느낌에 젖어들게 된다. 추분 무렵부터 햇볕은 내려 쪼이나 작열하지는 않아 뜨겁지 않고 따사로울 뿐이어서 더 이상 무더위도 없게 된다. 이때의 햇볕은 따갑지만 살갗을 태우지는 않기에 ‘가을볕에는 딸을 쪼이고, 봄볕에는 며느리를 쪼인다’는 속담이 있다.

추분 절기 에세이 사진 1
추분은 대체로 추석(秋夕)이 드는 때로 따사로운 햇볕에 벼들이 누렇게 익어 가면서 들녘은 황금빛 물결이 일렁인다. / 이효성 자문위원장
일조량이 줄어들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면서 느티나무, 벚나무, 담쟁이, 칠엽수, 화살나무 등을 비롯해서 단풍이 일찍 드는 나뭇잎들은 추분 절기 중에 상당한 변색을 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들녘에서는 여름내 짙푸르기만 하던 벼들이 따사로운 햇볕에 하루가 다르게 누렇게 익어 가서 바람이 불면 황금빛 물결로 일렁이는 모습도 볼 수 있고, 익어가는 벼들의 구수한 냄새도 맡을 수 있다. 이 무렵은 벼꽃의 수정도 다 끝나고 따사로운 가을볕에 벼가 영그는 일만 남아 있어 ‘백로가 지나서는 논에 가볼 필요가 없다’는 속담이 있다.

추분 어간에는 백로 무렵부터 이어지는 선선하고 청량한 대기와 따사로운 햇볕으로 벼와 수수 등 오곡은 단단히 여물고, 배와 사과 등 백과는 단맛을 더한다. 고추가 붉게 익고, 탱자가 노래지고, 밤송이가 벌어지고, 도토리가 떨어진다. 이 무렵부터 이른 추수가 시작되며 가을볕에 말려온 호박고지, 박고지 등을 거두어들이고, 산나물을 말려 묵은 나물을 준비하고, 익은 고추, 호박순, 고구마순, 깻잎, 콩잎 등을 채취하고, 참께, 콩, 땅콩, 고구마 등을 수확한다. 송이는 추분 절기에 많이 채취되는데 강원도 양양과 경상북도 봉화 등의 송이축제도 이 무렵에 열린다. 추분 전후로 근해(近海)에서는 전어(錢魚)가 많이 잡히는데 이 무렵에 전남 보성에서는 전어 축제가 그리고 서해안 곳곳에서는 전어와 대하(大蝦) 축제가 열린다.

미질(米質)을 높이고 벼의 추수를 위해 논바닥을 말리려면 추분 무렵에 논에서 물을 완전히 빼야 한다. 논에서 물을 빼기 위해서는 논배미가 수로나 도랑을 끼고 있으면 그쪽으로, 아니면 아랫배미 쪽으로, 그냥 물꼬를 터주면 된다. 이때 그 물꼬 밑에 용수나 어레미를 대어두면, 유기농을 한 경우, 봄에 모내기를 위해 물을 댄 이후부터 논에서 자란 붕어, 잉어, 피라미, 송사리, 미꾸라지, 민물새우 등의 민물고기들이 물에 떠밀려 꽤나 잡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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