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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연중 가장 기분 좋은 철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연중 가장 기분 좋은 철

기사승인 2021. 09. 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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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처서’(8월 23일~9월 6일)가 있는 8월 하순부터는 더위가 끝나간다. 8월 하순은 하지로부터 60일 정도가 지난 시점이므로 태양의 고도도 상당히 낮아지고 햇볕의 열기도 많이 누그러진 시점이다. 게다가 조석으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 그동안 축적되기만 했던 대기의 열기도 이제 조금씩 식어가게 된다. 아직 낮에는 늦더위가 위세를 부리기도 하지만 조석의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낮에도 습기가 가신 고슬고슬한 바람이 불기도 하고, 무더위가 약해져 이마에 땀이 나지 않는다. 이와 함께 밤에는 처네나 얇은 이불을 덮어야 할 정도로 일교차가 커진다.

9월이 되면 달력상 초가을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천둥번개는 거의 사라지고, 하늘은 점점 더 맑아지기 시작한다. 대기는 아예 습기가 가셔서 건조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피부는 상쾌한 촉감으로 가을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처럼 이때부터 모기나 파리의 성화도 면하게 된다. 파리나 모기가 견디지 못할 만큼 조석으로는 서늘해졌다는 뜻이다.

이 무렵 아침과 저녁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점점 높푸르러지는 하늘, 일부 나뭇잎들의 변색, 잦아드는 매미의 구애소리, 점점 커지는 풀벌레의 전원교향악, 건조해진 대기 속을 나는 붉은 혼인 색의 고추잠자리, 따가우나 뜨겁지 않은 햇볕, 그 볕으로 태양초를 만들기 위해 마당에 널린 붉은 고추 등이 초가을 기분을 더한다. 우리의 오관에는 무더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여러 전령사들이 포착된다.

그러나 추위가 바로 물러가지 않듯, 더위 또한 일시에 물러가지는 않는다. 8월 후반의 보름과 9월 초반의 보름은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전형적인 교절기(交節氣)라 할 수 있다. 날씨가 선선해졌다고 느끼자마자 다시 무더워지고, 무더워지는가 싶으면 다시 선선해진다. 어쨌든 이 무렵 만만치 않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처서 밑에는 까마귀 대가리가 벗어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늦더위와 노인 건강”이라는 속언이 암시하듯, 늦더위는 오래가지는 못한다. 자연은 순리대로 상쾌하고 선선한 날씨에로 되돌릴 수 없는 진군을 이미 시작했기 때문이다. 늦더위의 심술에도 계절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선선한 가을로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늦더위 속에서도 대기가 건조해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므로 사람들은 장마와 무더위로 축축해진 곡식을 바람에 쐬는 거풍(擧風)도 하고, 눅눅해진 이불이나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나 그늘에 말리는 음건(陰乾)도 한다.

이 무렵은 피부를 끈적거리게 하던 무더위가 사라지면서 기분이 삽상해지고, 뭉게구름이나 먹구름으로 가득 차던 하늘이 높아지고 푸르러져 경관이 시원스레 트이고, 습하고 뜨겁던 대기가 건조하고 선선해져 공기에서 산뜻함이 느껴지고, 온 주위를 메우던 시끄러운 매미소리 대신 섬돌 밑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는 가냘프기 그지없다. 이처럼 이 무렵 우리의 주위는 온통 기분 좋은 것들로 가득하다. 무더위 대신 건조하고 선선한 바람과 함께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작용하여 일으키는 상쾌한 기분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이때가 연중 가장 기분 좋은 철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감각은 좋은 환경 속에만 있을 때는 역치(□値)의 상승으로 인해 좋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나쁜 환경에서 좋은 환경으로 바뀌는 순간에는 역치가 낮아 그 좋은 환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그 순간에 최고의 상쾌한 기분을 갖게 된다. 초가을에 연중 가장 기분이 좋은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을이 무르익어 선선함이 지속되면 그 선선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늦여름의 무더위에 시달리다가 초가을이 되어 처음으로 선선한 날씨를 접하게 되면 우리 감각은 그 선선함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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