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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의 보수적 DNA, 어디서 기인했나

GS의 보수적 DNA, 어디서 기인했나

기사승인 2021. 02. 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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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동업 당시 구씨일가와 역할분담
경영서 손 떼고 재무적 지원에 힘써
허창수·허태수 형제도 돈관리 능통
일각 "지나친 수계산으로 기회 놓쳐"
허만정
창업주인 허만정(사진)은 자손들에게 “경영은 구 씨 집안이 알아서 잘 하니 처신을 잘 해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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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적이며 보수적인 분위기,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기업, 국내 재벌 그룹 중 가장 신중하게 리스크 관리를 하는 그룹….”

GS그룹을 바라보는 재계의 평가다. GS그룹의 보수 경영은 특히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그룹을 이끌던 허창수 회장(현 GS그룹 명예회장)은 수 년 전부터 대우조선해양 인수 전담팀까지 꾸리며 강한 인수 의지를 공공연히 표명해 왔으나, 결국 포스코와 입찰금액을 놓고 입장을 좁히는 데 실패해 다 잡은 대어를 놓쳤다. 당시 재계에서는 “주판알을 너무 튕긴 것 아니냐”는 혹평이 주를 이뤘다.

이뿐만 아니다. 두산인프라코어 인수전에서도 GS건설은 강력한 인수 후보 중 하나로 꼽혔지만 ‘실사자료 확보 미흡과 인수를 위한 변수 추가 검토 필요’를 이유로 본입찰에 나서지 않았다.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에 따른 우발부채 우려가 GS의 인수전 참여를 소극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이처럼 GS그룹은 과감하기보다는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경영 태도를 보였다. 보수적인 경영의 배경에는 LG그룹과의 동업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재무통’ 허 씨 일가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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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5월 락희화학주식회사와 미국의 칼텍스 석유회사는 합작투자를 통해 호남정유주식회사를 세웠다. 호남정유는 1969년 6월 여수공장 제1원유정제시설을 준공하고 6만 배럴 정제 시설로 탄생했다. 1986년 9월 한국의 단독 경영체제가 되었다. 1996년 LG칼텍스정유로, 2005년에는 GS칼텍스주식회사로 회사 이름을 바꿨다.
22일 재계와 GS그룹에 따르면 LG그룹과 동업 당시, LG의 구 씨 집안과 GS의 허 씨 집안은 역할 분담이 확실했다. 구씨 일가가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거나 대외적인 경영을 맡았다면 허 씨 일가는 재무와 경리 쪽을 맡아 기업을 꾸리는 ‘살림꾼’ 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역할 분담은 동업의 뿌리부터 이어져 온 일종의 전통이었다. 진주의 만석꾼이었던 허만정은 해방 직후 오랜 이웃이자 사돈이었던 연암 구인회가 락희화학공업사를 창업할 때 거액의 자본을 댔다. 오늘날의 LG의 토대에는 허만정의 자금이 바탕이 된 셈이다.

허만정은 특히 자손들에게 “경영은 구 씨 집안이 알아서 잘 하니 처신을 잘 해 돕는 일에만 충실하라”고 당부했다. 이후로도 허 씨 일가는 구 씨 일가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재무적인 후방 지원군 역할을 도맡아 왔다. 허창수 명예회장 역시 계열분리 전까지 그룹 행사 등에서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돋보이도록 한 발짝 뒤에서 동행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전통이 대를 이어 내려온 셈이다.

이같은 배경이 재무 중심의 신중한 GS그룹 문화를 만들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허창수 명예회장은 숫자에 밝은 재무통으로 꼽힌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마친 허 명예회장은 LG그룹서 분가를 준비하기 전까지 LG건설에서 재무와 경리에 집중했다. 그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라”며 결정에 신중했다.

GS그룹 출범식
2005년 GS그룹은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을 개최하고 공식 출범했다. 허창수 당시 GS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이 출범식에서 역동성과 신선함을 살리기 위해 오렌지와 블루, 그린 등 원색으로 제작한 GS 깃발을 흔들고 있다.
현재 GS그룹을 이끌고 있는 허태수 회장 역시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MBA 과정을 밟은 후 콘티넨털은행, 어빙은행 등 금융권 경력을 이어왔으며, LG증권서 증권맨 생활도 경험해 ‘돈관리’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무 중심의 그룹 문화는 일장일단이 있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신중한 경영판단을 통한 꼼꼼한 재무 관리가 실속을 챙기는 한 수가 될 수 있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며 과감한 M&A를 통해 기존 사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동력 확보 필요성이 대두될 때, 취약성이 드러난다. 이때문에 GS그룹에 ‘손이 작다’는 비판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GS그룹은 항상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안전하게 경영을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위기관리 능력에서는 강점일 수 있지만, 신사업 추진과 관련해 과감한 결단마저 내리지 못할 경우엔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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