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 회장으로 일할 때의 일이다. 평소 몇몇 직원들을 눈여겨보고 있다가 해당 직원들을 임원으로 승진시키기 위해 사무실로 불렀다. 그런데 승진 대상으로 낙점된 직원들은 한결같이 승진을 고사했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필자는 열심히 일한 과실로 승진을 부여한다고 생각했는데 직원들은 하나같이 승진자 명단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제발 편하게 오래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필자는 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생활을 10년 했다. 감사원에 있었다. 이후 삼성그룹에 입사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그리고 전경련에서 3년간 일했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제주도지사에 2번 출마한 적도 있다. 이후 마사회라는 공기업에서 일했다.
다양한 경험을 한 셈이다. 마사회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은 무엇보다 공기업은 개혁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공기업은 근본적인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몰려 있다.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공기업은 망해야 산다.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필자는 그곳에서 국민의 세금을 이런 식으로 탕진해도 되는지 늘 불안했다.
국내 공기업에 대한 일반 국민과 취업준비생의 평가도 극단적으로 다르다. 대국민 조사에서 신뢰받는 기업은 단연 삼성전자 같은 민간기업들이다. 공기업은 상위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고객만족도나 인식조사에서도 전반적으로 민간기업이 공기업보다 더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반면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공기업도 민간기업 못지 않게 선호도가 높다.
어떤 조직이든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공기업과 달리 민간기업은 경쟁력이 없으면 죽는다. 필자가 삼성에서 일했던 몇 십 년간 자나 깨나 머릿속에 있던 단 하나의 고민은 경쟁력이었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뿐이었다.
반면 공기업 생태계에는 경쟁이 없다. 공기업은 대부분 독점 아니면 과점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민간기업은 주인이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공기업은 주인이 국민이다. 사실상 주인이 없다는 뜻이다. 대신에 2~3년 뒤면 물러날 게 뻔한 CEO가 있다. 공기업 경영진이라는 자리가 사실상 선거에서 이긴 자들의 전리품으로 전락해 있다. 중앙부처의 장차관이나 핵심간부들이 제2의 인생을 영위하는 자리가 될 때도 있다. 기업현장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대담하게도 공기업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게 현실이다. 공기업이 정치세력의 전리품이 됐는데 경쟁력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공기업은 대부분 성과체계도 없다. 물론 성과를 매기긴 하나 형식에 그칠 뿐이다. 직원들은 연공서열에 따라 급여가 올라간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 장치가 없다는 말이다.
공기업도 나름의 비전은 있다. 하지만 2~3년 임기의 CEO가 무슨 비전을 만들겠는가. 경쟁이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그래서 공기업은 죽었다. 공기업이 아무리 법령에 의해 설립됐어도 생태적으로 지속성장할 수는 없다. 공기업은 적자가 나면 정부 예산으로 메꾼다. 그 예산이란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절실함이 없는 조직은 결국 소멸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