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대중가요의 아리랑] <57> 불교적 테마의 가요 ‘수덕사의 여승’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too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015010006657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3. 10. 15. 17:48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수덕사의 여승'은 1960년대를 풍미한 불교적인 테마의 대중가요이다.

'수덕사의 여승'은 한 편의 시를 떠올린다. 조지훈의 '승무(僧舞)'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여승의 춤을 통해 세속의 희로애락을 불교적으로 승화시킨 명작이다. 번뇌를 극복하고 성불(成佛)의 길로 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던가. 하물며 가녀린 여인의 몸으로….

고즈넉한 밤 산사에서 속세의 인연을 쉬 끊지 못하고 고뇌하는 여승의 모습은 '승무'의 고아한 시적 분위기에 비하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대중의 가슴에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가요의 장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덕사의 여승'은 불교계의 반발을 불러오며 한때 금지곡이 되는 파란도 겪었다.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수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라는 가사가 문제였다.

수행 정진하는 비구니 스님들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폄하했다는 것이었다. 불교계와 스님들의 입장을 이해할 만도 했다. 충남 예산에 위치한 수덕사는 우리 불교계의 큰 산맥 중 하나인 덕숭총림의 본산으로 경허 만공 혜암 스님으로 이어지는 도도한 선풍을 지녀온 곳이다. 또한 경북 청도 운문사처럼 규모 있는 비구니 수행도량도 아니었다. 다만 수덕사에 딸린 견성암이 여승의 수행처였을 뿐이다.
그런데도 비구니와 불교를 소재로 한 인기 가요가 수덕사를 배경으로 탄생한 것은 암울한 시대에 처연한 자취를 남기고 간 신여성들의 전설 같은 삶 때문이었다. 개화기 여류 문인이자 예술가였던 김일엽과 나혜석은 유교 사회의 인습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자유분방한 사랑의 불꽃으로 사위어간 여인이었다. 김일엽의 본명은 김원주. 일엽(一葉)이란 필명은 춘원 이광수가 지어준 것인데 출가 후에 법명이 되었다.

일엽은 어긋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가 그곳 명문가의 대학생과 또 운명적으로 만났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여정에 아들이 하나 태어났다. 일본에서 돌아온 일엽은 여전히 여성해방과 자유연애를 추구했지만 모진 세파에 으스러진 심신을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출가를 했다. 수덕사의 여승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래 속 여승의 모델이 바로 일엽 스님이라는 주장도 있다.

일엽 스님이 어머니가 그리워 바다를 건너온 어린 아들을 냉정하게 외면하며 절 밖에 재웠다는 유명한 일화도 전한다. 수덕사 인근 여관에 머물던 스님의 아들을 어머니처럼 따뜻하게 보듬어주며 그림을 가르친 사람은 화가 나혜석이었다. 그녀 또한 사랑에 버림받고 산사 주변을 서성거리던 시절이었다. 일엽은 가슴에 사무치는 정한과 두 볼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어떻게 초월했을까.

염불처럼 낭랑하면서도 가슴을 적시는 애절한 성음은 실제의 사연과 연계되면서 더 아련하고 묘한 여운을 남겼다. 송춘희의 출세곡이자 간판곡이 된 '수덕사의 여승'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딸이었던 가수의 삶도 바꿔놓았다. 그녀는 노래와의 인연으로 불교에 귀의했다. 평생 불자 가수로 활동을 해온 것이다. 노래 또한 오랜 세월 대중의 불교적 심성을 환기시키며 지금껏 중장년층의 애창곡으로 남아있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