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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칼럼] 팔레스타인 전쟁, 한국에 주는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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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1. 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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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보복전으로 서울 3분의 1 정도 크기의 가자(Gaza)는 전쟁터가 되었다. 그동안 잘 모르거나 잊혀 있던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민족의 존재에 세계가 주목하게 되었다. 하마스는 이와 함께 인질획득과 아랍국가·이스라엘 간의 접근 추세를 저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지만 가자 주민들의 전쟁 피해는 커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장비는 하마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월등하지만 하마스는 결사항전의 자세로 아랍과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을 기대한다.

10월 7일 발발한 전쟁은 10월 31일까지 막대한 민간인 피해 발생과 더불어 취재기자 35명이 사망했다. 양측이 내보내는 선전전도 적극적으로 전개되어 세계를 진영화시키고 있다.

중동학자 골드 슈미트는 중동전쟁을 인간 본성이 드러나는 시금석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본다면 중동전쟁은 이슬람과 유대교를 사상 자원화한 영토전쟁이며 강대국의 대리전이다. 중동전에 일부 영토를 상실한 시리아와 레바논은 절치부심으로 팔레스타인의 강한 지원세력이 되어 있고 이들 뒤에는 이란이 적극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2002년 아랍연맹이 제안한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라는 유엔안보리결의안 242호의 집행이 실현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난망시된다.

이전 중동전과 마찬가지로 금번에도 종전은 미국과 러시아의 노력에 달려있고 유엔과 국제여론이 변수가 된다. 팔레스타인은 과거 소규모 충돌에서 축적한 역량으로 최대한 항전할 것이고 패배해도 다음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과거에 이스라엘군이 자랑한 메르카바 전차를 파괴하기도 했지만 전력차를 극복하기는 어렵다. 이스라엘은 국내의 확전 찬반 여론의 압력, 상당수의 민간인과 238명 인질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여기에 리쿠드당의 정치력과 외교력이 문제가 된다.
중동은 석유자원과 지정학적 요충지로 제1차 세계대전부터 줄곧 강대국의 진영편입 노력의 대상이 되어왔다. 따라서 금번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도 이러한 외적 요인은 작동 중이다. 미국은 1991년 소련 붕괴 후 대통령 안보보좌관 브레진스키가 작성한 "그랜드 체스보드"와 키신저의 "신세계 질서" 그리고 러시아는 "2007년 푸틴의 뮌헨연설"에서 천명한 것처럼 지구적 차원에서의 전략적 사고에 따를 것이다.

이 때문에 중동전의 확전 가능성을 감안하면 지금은 외교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세계 평화를 위한 외교의 역할로 우크라이나에서 핵전쟁의 위협이 거론되는 작금에는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과거 활발했던 중동평화과정은 2000년대 들어 중단된 상태다. 온전하고 포괄적인 평화시도가 소거된 와중에 팔레스타인의 고립은 계속되고 이스라엘 정착촌의 확대와 철제 방벽으로 열악한 생활환경이 계속되는 중이다. 유엔총회가 휴전촉구 결의문을 채택했지만 중요한 것은 평화과정의 로드맵을 다시 살리는 일이다. 중동에서의 안정은 한반도의 안정과도 연동되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와 총회의 엇박자가 나오는 중에 중견국의 외교활동을 볼 필요가 있다. 10월 31일자 예루살렘 포스트는 카타르가 평화회복을 위해 금번 전쟁에 중개외교로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타르는 우데이다 공군기지에 미공군중부지휘사령부(CENTOM)가 주둔하면서 미국과 강고한 협력관계에 있는 나라다. 아랍 왕정국가로는 최초로 1996년 이스라엘과 통상대표부를 교환했고 탈레반과 하마스, 이란과도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다. 비동맹운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우호국가를 확보하고 있으며 과거 중동분쟁에서 공정한 중개자를 자처하면서 양측의 중개외교로 미국과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시킨 외교력을 과시했다. 이같이 연성국력을 높이고 외교지평을 확대한 배경에는 에너지 자원 수출로 축적한 국부펀드의 경제력이 있다. 아울러 폴 케네디가 《강대국의 흥망》에서 말한 "국력을 제대로 쓰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작은 나라로서 강한 용기와 분명한 국가 비전을 갖고 있고 알자지라 방송과 같은 연성국력으로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전략이다.

팔레스타인 전쟁은 한국에 위기와 기회를 준다. 한국전쟁 이후로 한국외교는 북한 문제로 인해 장기간 지엽적이고 소극성에 묶여 있었다. 이제는 월등히 강화된 국력을 바탕으로 외교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에서 높아진 국가위상에 따른 책임과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동적 외교는 강국들의 주창외교의 구심력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고 한국의 입지를 확보하기 어렵게 한다. 따라서 국제사회에 설득력 있는 명분을 세우고 능동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방산물자의 수출과 경제적 효과에 머물지 않고 중장기적인 정치와 안보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동전쟁의 확산성과 상대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국제관계와 국력은 언제나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더구나 한반도 상황과 연동된 군사와 경제적 안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국가의 비전을 분명히 하면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른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하는 시기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 한국외교는 좌표를 잃고 국익은 국제조류에 휩쓸려 가는 결과가 된다.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고별사에서 이제 태동한 미국이 국제관계에서 철저한 이해관계와 이성적 관계를 잃지 말고 감성적인 흐름에 맡기지 말도록 후임자들에게 권고했다. 성장기의 국가는 국제분쟁에서 과도하게 특정 세력에 휩쓸리지 말 것과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사학자 도널드 케이건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평가하면서 그리스의 변방 잘 알려지지 않았던 플라타이아에 대한 테베의 공격이 장기간 그리스 전체를 전쟁으로 끌고 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가자에서의 이번 전쟁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갑자기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끌려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가 유의해야 한다.

정기종 전 카타르 대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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