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태고종 능해스님 “영종도 용궁사, 대원군 꿈 키운 천년고찰”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too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31211010005745

글자크기

닫기

황의중 기자

승인 : 2023. 12. 11. 10:39

[인터뷰] 용궁사 주지·인천불교총연합회장
원효대사 창건한 용궁사, 다양한 설화 간직해
"더불어 사는 기도 연습하면 행복한 삶 얻어"
태고종 용궁사 주지 능해스님
인천 영종도 용궁사 대웅전 앞에서 그동안의 불사(佛事)를 설명하는 주지 능해스님. 능해스님은 현재 태고종 행정부원장, 인천불교총연합회 32대 회장이다./사진=황의중 기자
인천 영종도 용궁사 주지 능해스님은 한국불교태고종 행정부원장이자 인천불교총연합회 32대 회장이다. 흥선대원군이 칩거한 천년고찰 용궁사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데에는 능해스님의 공이 컸다. 최근 용궁사에서 만난 능해스님은 바쁜 생활 속에서도 즐거운 모습이었다. 대중교화가 스님의 본분인 이상 게으름을 피울 틈이 없다고 말한 그는 사회인들에게 기도를 권했다. 더불어 사는 기도야말로 행복한 삶을 이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은 능해스님과 나눈 대화다.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법선스님(태고종 원로의원)을 은사로, 서봉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고 덕암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각각 수지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수료하고 태고종 총무원에서 사회·교무·총무부장을 역임했다. 또한 교류협력실장, 종단사 간행위원회 총무,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고종 행정부원장이자 용궁사 주지면서 사단법인 인천불교총연합회 32대 회장이다."

-영종도 용궁사는 어떤 절인가.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원효대사가 영종도 백운산 기슭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흥선대원군이 안동김씨 눈을 피해 이곳에서 칩거하면서다. 이곳에서 꿈을 키운 대원군은 고종이 왕이 되자 불사를 했고 이때 사찰 이름도 백운사에서 용궁사로 바꾼다. 대원군이 직접 용궁사라고 쓴 현판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시주자의 공덕을 기리는 현판도 남아있는데 대원군 때 유명했던 풍양조씨 조대비와 왕비, 세자빈, 상궁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내가 부임해서 대웅전을 세우려고 땅을 파보니까 고려 초기 집터가 발견됐다. 또한 고려기와 조각도 근처에서 발굴됐다. 이러한 증거를 보면 용궁사는 천년고찰로 보는 게 맞다."

-오래된 절이니 다양한 설화도 전해졌을 것 같다.

"마을 어부가 바다에서 그물로 옥(玉) 불상을 건져낸 뒤 용궁사에 모셨다는 설화가 있다. 옥 불상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인천 토박이들 얘기로는 예전부터 인천 사람들이 용궁사를 다녔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 뱃사람을 보호해준다는 믿음이 있기에 용궁사는 관세음보살 기도를 하는 관음도량으로 알려진 것 같다. 요사채, 관음전, 삼성각, 용황각 등이 지방문화재로, 관음전 탱화인 수월관음도 역시 지방문화재다. 수월관음도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해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아침에 스님이 예불하려고 관음전에 갔더니 상처투성이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알고 보니 전각 안에 있는 수월관음도를 훔치려고 온 도둑이었다. 수월관음도를 훔치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굴러떨어져서 크게 다쳤다는 것이다. 도둑은 '신장(神將)님한테 벌 받았다'며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불쌍하게 여긴 스님이 용서하니까 도둑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만큼 이곳 관음전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영험한 곳으로 알려졌다."
-용궁사가 지금 모습을 갖추는 데 공이 크신 걸로 안다.

"2012년 주지로 부임해 용궁사 일대를 정비했다. 사찰 주변 석축을 다시 쌓고 관음전도 보수했다. 용궁사 불자들의 숙원인 대웅전을 신축해 2021년 10월 낙성식을 가졌다. 대웅전 불사를 하면서 770여 개의 원불(願佛)상을 모셨다. 이 불사에 신도들이 많이 동참해 준 덕택에 대웅전 불사를 원만하게 마칠 수 있었다."

-인천불교총연합회장으로서 활동은.

"2022년 7월 19일 치러진 제32대 인천불교총연합회장 선거에서 회장으로 추대됐다. 인천불교총연합회는 16개 종단 380여 사찰이 모인 단체로 75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인천불교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일하겠다고 공약했다. 지금까진 잘해왔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부처님오신날 연등회를 인천시 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3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진행했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여서 우려가 많았지만 성황리에 행사를 치러냈다. 6월 현충의 달을 맞아서는 연평해전으로 숨진 군인들을 위한 추모재를 연평도 평화공원 군 법당에서 봉행했다. 지난 7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김장김치를 전달했고, 앞으로 쌀·라면·휴지 등 약 500만원 상당의 물품를 전달할 예정이다. 동짓날에는 영종역·운서역, 경로당, 관공서를 찾아 팥죽 2000그릇을 나눌 계획이다."

-인천 불교계의 특성이 있다면.

"인천 불교는 초종파적이다. 종단이나 사찰 소속에 구애받지 않는 편이다. 휴전선 인근에 있다 보니 전쟁 관련 추모사업이나 위령재가 많다. 또한 인천재가불자총연합회, 인천불교발전시민연합 등 이런 재가불자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편이다."

-승려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수행과 교화다. 승려는 인천(人天·사람과 천신)의 스승이라고 부른다. 이 말대로 되려면 수행과 정진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이를 다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부단히 정진하고 하심(下心)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옛날과 달리 현시대 사람들은 지적 수준이 높다. 교화를 위해서는 스님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산속에 오래 있다고 다가 아니다.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수행법을 대중에게 설명해 봐야 소용없다. 인도불교가 망한 것도 대중불교가 아닌 소수를 위한 불교였기 때문이다. 대중교화에 손을 놓고 은둔에 매몰된 불교는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나는 원효스님이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염불이면 된다'고 가르친 '저잣거리 불교'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불교가 살아남았다고 본다.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중생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절대 혼자 살 수 없다. 더불어 화합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어떤 믿음을 가지든 기도는 꼭 해야 한다. 기도는 자신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행위다. 기도하지 않고 배려조차 없으면 그 사람의 삶은 팍팍하고 무미건조하다. 기도하는 삶은 서원을 세우게 하고 희망을 준다. 이왕 기도할 거면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기도를 하자.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 번만이라도 매일 하자. 이렇게 기도를 꾸준히 한다면 일상에서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clip20231210122303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 흥선대원군의 호인 석파가 쓰여있다./사진=황의중 기자
clip20231210122326
용궁사 시주자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긴 편액. 대왕대비 조씨(조대비)를 비롯해 왕비, 빈, 상궁이 시주자로 기록됐다./사진=황의중 기자
clip20231210122615
지방문화재인 용궁사 관음전 내 수월관음도./사진=황의중 기자
clip20231210122418
지난 6월 열린 연평해전 추모재. 인천불교총연합회는 연평도 평화공원 군 법당에서 이 추모재를 봉행했다./제공=용궁사
황의중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