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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2인자 시리즈] 최룡해, ‘숙청설’ 딛고 ‘2인자’ 자리매김한 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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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빈 기자

승인 : 2024. 05. 17. 17:59

북한 공식서열 2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역임
김정은 속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도 지내
2014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양건·황병서 등과 한국 찾기도
북한 당·정부 간부들 조선혁명박물관 참관
최룡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2주년(4월 25일)을 맞아 지난 4월 24일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연합
북한의 최룡해는 김정은 집권기 2인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북한의 공식 서열 2위 자리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차지하고 있다. 또 김 위원장이 직접 속한 핵심 국정기구인 국무위원회에서 제1부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당은 물론 핵심 국가기구에서도 2인자 자리를 공고히했다는 평가다.

김정은 집권기 내내 탄탄대로를 걷던 최 상임위원장은 지난 2015년 잠시 '숙청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2019년엔 북한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 오르는 반전을 보였다.

최룡해는 1950년 1월 15일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군 입대 후 김일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며 엘리트 중앙정치인으로 준비한다. 청년 최룡해는 사로청중앙위원회 부부장, 부장 등을 거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1비서를 지내며 청년 정치인으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다 당중앙위원회 부부장과 황해북도당 책임비서를 지내며 중앙 정치 무대를 두들긴다.

2010년 9월부터는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있다가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급속 승진했다. 같은해 9월엔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선출됐다. 이어 2012년 4월 진행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선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출된 후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됐다.
최 상임위원장은 북한의 핵 폭주가 시작되자 더 존재감이 커졌다. 2013년 북핵 실험 후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해 국제 사회에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는데, 당시 핵심 지도층인 김양건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와 황병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동행했다.

최 상임위원장은 김정은이 현지 시찰 등 공개행보 시 바로 옆에서 수행해왔다. 북한의 2인자로 불리는 명확한 근거였다. 하지만 2015년 당시 최룡해 당비서는 인민군 원수의 국가장의위원회 170명 명단에 빠졌고, 공식 행사 주석단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숙청설이 돌았다.

앞서 김 위원장의 제1비서를 수행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순식간에 숙청된 전례가 있어 '최룡해 숙청설'에 힘이 실렸다. 실제 3개월 간 북한이 공개한 사진엔 최룡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최룡해 숙청설이 사실로 굳어지는 듯 보였지만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창립 70돌 경축행사 대표증 수여' 행사에서 연설하며 평양에 재등장했다.

3개월 간의 공백과 주요 당직자 자리에서 밀려난 점 때문에 최룡해는 권력층에서 완전히 밀려났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2019년 최고인민회의 14기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직에 오르며 일거에 상황이 반전됐다. 이에 더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직을 겸하며 '2인자' 자리에 복귀했다.

최룡해가 오른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북한 직제표에 없던 자리다. 북한은 최룡해를 위해 헌법을 뜯어 고치면서까지 이 자리를 만들었다. 최룡해가 확실히 북한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최룡해는 당에 이어 핵심 국가기구에서도 2인자임을 공고히하면서 여전한 실세를 누리고 있다.
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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