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최고기온 35도에 이르는 6일 오후 12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도로에서 김모씨(77)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찜통 더위 속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박주연기자
"전단지 받아 주세요. 감사합니다. 꼭 버리지 말아 주세요."
6일 오후 12시께 뜨거운 햇볕이 내려쬐는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는 77세 김모씨가 오가는 시민들을 향해 연신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낮 최고기온 35도를 웃도는 살인적인 폭염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지만 김씨는 챙이 넓은 모자에 장갑을 낀 채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었다. 전단지 내밀기를 반복하면서 김씨가 2시간 동안 건넨 전단지는 무려 300여장. 유동 인구가 제일 많은 시간인 점심시간(오전 11시 30분~오후 1시 30분)과 퇴근시간(오후 5~7시), 하루에 두 번 이 일을 한다고 한다.
김씨는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생활비를 마련하고 싶은데, 이 나이에 일거리를 얻는다는 게 쉽지 않다"며 "2시간에 2만3000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온몸이 땀 범벅이 돼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 후 60대로 접어 들어서면서 이 일을 시작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인들이 저임금·단순직으로 내몰리면서 살인적인 폭염에 거리로 나오고 있다. 연일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폭염 속 온열질환 환자가 늘면서 아찔한 사고 우려가 제기된다.
이날 여의도역 주변에는 50m 채 안되는 거리에 3명의 노인이 서로 다른 전단지를 각각 돌리는 등 거리마다 '전단지 노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더위보다 무서운 생활고에 주 5일을 일하고 월 100만원 남짓한 수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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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최고기온 35도에 이르는 6일 오후 12시께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 도로에서 한 어르신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찜통 더위 속 전단지를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박주연기자
보건복지부의 2020년 노인 실태조사에서는 취업 노인의 절반가량(48.7%)이 전단지 배포와 같은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노인들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폭염에도 야외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추정된다. 지난해 복지부의 60세 이상 고령자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 조사에서도 '본인 혹은 배우자가 부담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이 76%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2013년(63.6%)부터 해마다 느는 추세다.
그러나 밤낮없는 찜통더위가 연일 이어지면서 땡볕에 노출된 노인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감시체계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이날까지 온열질환자는 총 1690명이고, 14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32.7%인 552명으로 다수를 차지했다. 고령자는 체온 유지와 땀 배출 조절 능력이 떨어져 온열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는 노인들이 가진 기술이나 지식을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부족해 단순노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퇴직 후 기존 전문성을 살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지자체 등에서도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는 단순노무 중심으로 이뤄져 결국 노인들은 저임금에 단순노무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