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까지도 합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노란봉투법은 위험
소외 받은 노동자 위해 움직일 때 노조의 역할 빛나게 될 터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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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사회평론가)의 시각대로라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노동조합(노조)을 매도하는 부류다. 즉 가난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가치에 역행하는 적폐인 셈이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회악'으로 분류될 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 직선제를 위해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린 것을 직접 목격했다. 약자를 위해 복지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12년 동안 교육받았다. 기계가 아니라며, 일요일은 쉬게 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을 대중매체서 숱하게 봐왔다. 생존권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 'YH 여공 사건'이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발점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내가 이제는 온몸으로 대한민국 노조의 행동을 거부하고 있다...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 -조지 오웰 '동물농장' 中"
고용노동부의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따르면 노동조합 조직률은 13.1%(2022년 기준)에 그친다. 즉 전체 노동자는 2070만7000명 중 272만명, 8명중 1명만 소속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소수의 힘은 거대하다. 이들이 노동계를 대표하면서 부조리와 엇박자는 늘 발생해왔다.
자신들만의 이익만 철저하게 쫓는 이기주의가 대표적이다. 조지 오웰의 시각을 빌리자면 겉으로 공생과 평등을 외치는 대기업 노조는 자신들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고용 세습'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파업하겠다는 그들의 행동은 고려시대 '음서제'를 떠올리게 한다.
2030세대의 실업률은 날이 갈수록 꼬꾸라지고 있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우리'만 살기 위해 공정한 채용 경쟁을 막고 청년들을 절망과 사지로 내 몰고 있다.
특히 노조의 활동은 대부분 대기업 위주로 흐른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묻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확대되는 것은 노조의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정점은 노란봉투법이다.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위법까지도 합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은 노조의 긍정적인 부분마저 삼켰다.
파업은 불법이 아니다. 다만, 불법파업에 있어선 업무 방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단체교섭이나 쟁의, 그밖에 노동조합의 활동으로 인한 손해의 경우 배상청구를 금지한다. 불법파업을 법으로 면죄한다는 희대의 보도 듣도 못한 논리다.
이쯤 되면 직장을 파괴하거나, 생각이 다른 동료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사보타주'는 애교수준이다.
물론 노조가 나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의 13%가 주도하는 현재 대한민국 노조의 행태는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더 많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전태일들과, YH여공들이 남아있다. 21세기의 전태일과 YH여공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노동자일수도, 사회에 갓 나온 20살 청춘일수도, 하루에 수십잔의 커피를 판매하는 학생일수도 있다. 이들을 돌보는 것은 등한시 하고, 자신들이 선택 받았다 믿고 행동한다면 '나'는 여전히 앞장서 노조를 매도할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밥그릇을 위해 초월적 힘을 쓰는 게 아닌, 소외받는 약자들을 구원하는 일...노조의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