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손수연의 오페라산책]예술의전당 오페라 ‘오텔로’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atoophoto.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26010013394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8. 26. 09:44

"총체적 예술을 표방한 베르디의 의도를 잘 구현한 무대"
ㅇ
예술의전당 오페라 '오텔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
"질투하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도 성경과도 같은 증거가 된단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주인공의 질투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평소 셰익스피어 작품을 추앙했던 베르디는 '아이다' 이후 15년간의 침묵을 깨고 1887년 '오셀로'를 이탈리아 오페라 '오텔로(Otello)'로 탄생시킨다. 그가 '오셀로'를 발표할 무렵 세상은 바그너의 시대로 변해있었다. '오텔로'를 보면 베르디가 말없이 얼마나 바그너를 의식해왔는지 알 수 있다. 기존 작풍과는 확연히 달라진 '오텔로'를 통해서 베르디만의 무지크드라마를 만들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예술의전당이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프로덕션으로 18~25일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오페라 '오텔로'는 이러한 작곡가의 의도를 잘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017년 초연된 이 작품은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30년 만에 새롭게 공연한 '오텔로'로 화제를 모았고, 당시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바리톤 마르코 브라토냐 등의 활약으로 높은 완성도를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이 같은 화제작을 한국으로 가져오면서 예술의전당은 테너 이용훈, 지휘자 카를로 리치 등 정상급 연주자와 지휘자를 캐스팅해 정면승부를 예고했다.

ㅇ
예술의전당 오페라 '오텔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
필자가 관람한 지난 22일 공연은 연출과 무대, 성악, 관현악이라는 오페라의 세 중심축이 빈틈없이 맞물리며 돌아간 느낌이었다. 전통적인 의상을 입은 등장인물에 비해 현대적인 무대디자인은 상징적 간결함이 돋보였다. 강렬하고 박진감 넘치는 관현악을 따라 노이 오페라 코러스도 최선을 다해 역동적인 도입부를 열었다. 폭풍우 속에 배가 요동치며 들어오는 장면을 음악과 작은 배 모형만으로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공연 내내 무대 위에서는 이원적 요소의 대립이 펼쳐졌다. 선과 악, 흑과 백, 신뢰와 불신, 빛과 어둠, 천사와 악마, 실제와 허상, 삶과 죽음 등 상호대립적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무대장치와 조명을 바탕으로 끝없이 충돌했다.
그 안에서 성악가들은 맡은 배역의 양면성과 본질적 성격을 그려내려 노력했다. 테너 이용훈은 날카롭고 풍성한 가창과 더불어 열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전반적으로 소리의 피치가 낮고 피아니시모로 노래하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아쉽긴 했으나 한국 데뷔무대였던 지난해 '투란도트' 공연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인 듯 보였다. 이아고 역할의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는 노래와 연기 양측 모두 무난하게 소화했지만 절대적 악인 이아고의 악마성을 부각시키기에는 다소 밋밋한 느낌이었다. 바살로가 이아고의 비뚤어진 사악함을 보다 강하게 표현했더라면 질투와 번민으로 몸부림치는 이용훈의 오셀로와 더 선명하게 대비될 수 있었을 것이다.

ㅇ
예술의전당 오페라 '오텔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
데스데모나 역할을 맡은 흐라추이 바센츠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듣기 어려운 질감의 소리를 가진 리릭 소프라노라고 본다. 또렷한 음색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안개에 쌓인 듯 우아하고 포근한 색깔을 가진 바센츠의 노래는 낯설었으리라는 생각도 드는데 4막에서 들려준 '버들의 노래'와 '아베마리아'는 그만의 개성을 잘 살린 절창이었다. 이밖에도 카시오 역의 테너 이명현, 에밀리아를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최종현, 로도비코 역을 맡은 베이스 이준석 등도 안정된 노래와 유연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주역들을 잘 뒷받침했다.

바그너의 악극과 의식해 총체적 예술을 표방한 베르디의 의도는 카를로 리치가 지휘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명확히 구현됐다. 요즘 들어 오페라 공연에서 눈에 띄게 발전한 연주력을 보여주고 있는 국립심포니는 이번 오페라에서 카를로 리치를 지휘자로 맞아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몰아치듯 집요하게 파고드는 현악은 물론이고 트럼펫 등 깔끔하게 울려 퍼진 관악도 만족스러운 연주를 들려줬다. 이날 인물의 심리상태는 노래뿐만 아니라 관현악을 통해 섬세하게 객석으로 전달됐다. 긴장감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속도 또한 일품이었다. 세계적인 오페라극장에서 성공한 프로덕션을 그대로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똑같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예술의전당이 오랜 기간 치밀하게 준비했다고 들었다. 자체 극장을 보유한 하우스가 오페라를 제작, 공연할 때의 순기능과 긍정적 효과를 여실히 보여준 무대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