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질서로 규정된 생활 세계는 이항 대립이 지배적이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이항 대립은 흑백논리, 젠더 문제, 세대 갈등 그리고 마음에 품은 정치적 성향을 기준으로 좌와 우를 나눈다. 수업하는 교실에도 이항 대립의 요소로 규정될 수 있는 것들이 넘친다. 학생과 선생, 남녀학생, 책상과 의자 등 이항 대립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넘친다. 그런데 이항 대립은 쉽게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이해된다. 대립 구도는 곧장 위계를 정하기 마련이다. 나를 중심으로 그 이외엔 여타의 것들로 타자화되기 일쑤다. 소위 대항해시대, 피부가 하얀 유럽인들은 자신들 외엔 유색인종이라고 칭했다. 자기가 선 위치에서, 한쪽 면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세상을 조망하는, 서구의 원근법적 사고방식은 지난 수백 년간 '폭력의 세기'로 이끌었다.
수업 얘기로 다시 돌아가, 영상 콘텐츠 제작 관련 기초과목에선 이항 대립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는 팁을 던지다가도, 교실을 바꿔 상위트랙에 해당하는 영화 영상 분석세미나 수업에선 이항 대립의 전복과 해체를 역설한다. 그러다가 가끔은 머쓱해져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이전에 배운 것들을 이제는 깨야 할 때입니다'라며 농을 친다. 교수자의 군색함을 눈치챈 일부 학생들은 웃음으로 응수해 준다. 간혹 아무런 반응이 없을 땐, 궁색함을 모면하려 '이럴 땐 웃어야 할 포인트입니다'라고 무리수를 두곤 한다.
어쨌든, 이번 학기엔 얘기할 만한 좋은 콘텐츠가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다. 리얼 다큐를 표방한 예능프로그램 '흑백요리사'가 바로 그것이다. 우선 그 이름이 도발적이다. '요리 계급 전쟁'이란 부제를 단 것부터가 노골적이다. 수강생들에게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오디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지만, 그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고 호언하였다. '슈퍼스타 K'의 허각, 울랄라 세션이 그랬던 것처럼 마이너리티의 반란 혹은 전복의 드라마가 이어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수싸움에 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슈퍼스타 시즌 4에서 엄친아 로이 킴이 우승을 차지한 전력도 있었다. 예능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교수자로서 필자의 장담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분석의 영역에선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서사 장르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쉽게 말해 드라마가 구성돼야 한다. 뻔한 결말이 아니라 예상된 기대치를 충족하기도 하고, 미끄러트리기도 한다. 반전의 반전 혹은 밀당을 수준 높게 구사한다. 프로그램을 준비한 이들은 치밀하게 여론전을 벌이며 관객을 흡입할 방법을 모색하고 오디션이 진행되는 과정 곳곳에 장치를 마련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어디까지나 비평의 영역, 즉 예능프로그램을 텍스트의 범주에서 다룬 해석일 뿐임을 밝혀둔다. 이름 없는 흑의 요리사들이 무명의 어둠을 뚫고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백의 요리사는 어디까지나 조연에 머물러야 한다. 당연하게도 신화적 영역에선 흑의 반란이자 영웅의 탄생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드라마투르기적 관점에서 제작진들은 한 수 위였다. 최종 우승자 권성준은 '나폴리 맛피아'라는 닉네임을 벗고 이름 찾기에 성공한다. 그런데 정작 기막힌 신의 한 수는, 준우승에 머무른 미국의 스타 셰프이자 경영자인 에드워드 리 역시 이균이란 본명을 찾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에드워드는 미국 남부 켄터키주에서 자주 쓰이는 식재료를 한식에 접목시킨 요리 연구가로 유명해진 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스스로 요리에 대한 열정을 자신의 뿌리와 현지의 식자재를 결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힌다. 한국인이지만 미국인으로 살아온 그가, 이번 오디션을 통해 온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이름을 찾은 것이다.
세간엔 흑백요리사에 관해 공정성 논란을 따지며 폄훼하는 글도 왕왕 올라온다. 리얼리티 다큐를 표방한 예능을 다큐멘터리로 받아들인 결과다. 예능은 예능일 뿐, 예능은 서사 장르로써 우리를 위로하는 효능감이 그 역할이다. 정작 다큐로 받아들여야 할 영역은 정치다. 흑백요리사의 이항 대립은 전쟁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양쪽 모두 이름을 찾게 되며 성공적인 대미를 장식했다. 흑백요리사의 엔딩은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다. 이제 여당은 보수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되찾고, 국민을 도용한 이름값을 해야 할 선택의 순간이 됐다. 정부의 온갖 무분별한 거부권행사에 대한 재표결 자체를 여당이 또다시 거부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국회가 대의 기관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민의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국민의 외침에 부응하는 일이다. 그게 제 이름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