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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는 대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을까? 바퀴는 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을까? 20세기 초부터 고고학·인류학에선 바퀴의 발명과 전파 과정을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수레바퀴는 여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명되었을까? 아니면, 한 지역에서 먼저 발명된 수레바퀴가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을까? 바로 이 문제를 놓고서 고고인류학자들은 일대 논쟁을 벌여왔다. 독립적 진화론(independent evolutionism) 대 확산론(diffusionism)의 대립이었다. 대체 수레바퀴가 뭐가 그리 대단하기에 고고인류학자들을 양분하는 격렬한 논쟁의 실마리가 되었을까?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수레바퀴의 발명은 단순히 바퀴 달린 운송수단의 발명에 머물지 않고 한 도시국가의 도로망을 정비하는 문명사적 일대 변화를 몰고 오는 실로 중대한 사건이었다. 수레바퀴의 사용 경로를 추적하지 않고선 문명사의 중요한 단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둘째, 수레바퀴가 일상생활에서 요긴하게 활용되기까지는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이 이뤄져야만 했다. 인류사에서 수레바퀴의 발명은 비유하자면 후대 컴퓨터의 발명에 비견되는 위대한 성과였다. 셋째, 수레바퀴에 관해 학계가 그토록 격렬하게 논쟁을 벌인 이유는 그 속에 문명사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수레바퀴가 앞선 문명에서 발명되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지역으로 전파되었다면, 지식과 기술의 전파는 문명사 발전의 중요한 계기라 인식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미개한 지역을 정복하는 침략 전쟁이나 강압적인 문호 개방의 요구는 문명의 혜택을 전파하는 적극적 활동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 특히 20세기 초반 수레바퀴 논쟁의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전파론에 따라서 수레바퀴의 전 지구적 확산을 설명하기 시작하면, 결국엔 제국주의적 확산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서방 제국주의의 가장 강력한 논거가 바로 수레바퀴 논쟁 속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 기발한 천재와 현명한 대중의 변증법
수레바퀴 논쟁에 관해 외계인 미도는 이런 말을 했다.
"수레바퀴에서 인공위성까지, 진흙 태블릿에서 스마트폰까지 지구인이 이룩해 온 문명적 성취는 실로 눈부십니다. 문명사의 지속적 발전은 지구인 특유의 호기심과 창의력이 전개된 과정이라 여겨집니다. 호기심과 창의력이 발휘되는 과정을 하나하나 깊이 살펴보면 놀랍게도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현명한 대중이 공동으로 참여해 광범위한 협업을 이뤄 온 결과로 보입니다. 지구 어디선가 특별히 창의적인 한 인물이 뭔가 기상천외한 발명품을 만들면 기다렸다는 듯 다수 군중은 그 발명품을 여러 환경에 맞게 적용해서 사용하는 슬기를 발휘합니다. 진실로 천재가 나타나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면, 실은 지구인의 문명 전체가 그 천재의 두뇌를 통해서 지적 돌파구를 뚫은 것이겠죠. 그렇게 천재적 소수와 현명한 다수의 상호적 협업이야말로 지구인의 문명사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아닐지요?"
문명은 "소수의 천재와 다수 현자의 협업"이라는 미도의 말을 생각해 본다.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수레바퀴를 만들었든 상관없다. 중요한 사실은 지구인들이 그 수레바퀴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문명의 이기에 대해서 과연 특명 문명만이 독점적 저작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미도가 말하듯, 인류 다수의 축적된 지혜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에 집적된 결과로 수레바퀴가 발명되었으며, 이후 큰 호응을 얻어서 다양한 문화권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갔다면, 그야말로 기발한 천재와 현명한 다수 군중의 협업 과정이다.
유가(儒家) 경전을 보면 하늘이 낸 성인(聖人)이 야만적인 다수 대중에게 씨뿌리기, 김매기, 베짜기를 가르쳐서 문명인으로 거듭나게 했다는 신화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물론 그러한 고대 신화엔 먼 옛날의 위대한 임금을 후세의 어리석은 군주와 대비시켜 폭정과 학정을 비판하려는 철학적 간지(奸智)가 담겨 있지만,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문명의 발상에서 성인의 절대적 역할을 강조하다 보면 결국 일인 지배(autocracy)를 정당화하는 음험한 엘리트주의로 귀결되게 된다.
바로 그 점에서 미도의 혜안이 돋보인다. 미도처럼 인류사의 전 과정을 현명한 다수 대중이 소수 천재를 길러내고, 천재의 기발한 발상과 탁월한 기술이 다수 현자를 통해서 전 인류에 전파되는 문명의 선순환적 피드백 과정을 볼 수 있다. 그 점에서 미도의 말마따나 문명이란 전 지구인이 참여해서 펼치는 상호적 사업(mutual enterprise)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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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대나 시대정신을 발현하는 중요 인물이 있다. 빌 게이츠는 1955년 10월 미국 서북부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서부 해안선을 타고 1000㎞ 정도 거리다. 두 사람이 같은 해에 미국 서부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그들이 태어난 바로 그 시기 바로 그 지역에서 디지털 혁명이 꿈틀꿈틀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기 두 사람은 8비트 퍼스컴에 빠져들었고 10대 후반 정도면 이미 최첨단의 프로그래머로 성장해서 이후 소프트웨어 산업을 주도했다.
1995년 '윈도우(Windows) 95'를 발매할 때 게이츠는 인터넷이 인류의 삶을 바꿀 새로운 "해일(海溢, tidal wave)"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윈도우 95'는 발매 첫 주에 100만개, 5주 만에 700만개가 팔렸고, 1998년 말이 되면 전체 시장의 57.4%를 잠식했다. 1996년 당시 지구 상에는 불과 1600만명 정도가 인터넷을 사용했는데, 윈도우 95가 보급되면서 그 인구는 천문학적 급증세를 보였다. 2024년 기준 55억명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게이츠와 잡스는 디지털 정보혁명을 이끈 그 세대 최고의 천재들이었지만, 그들은 바로 그 시기 딱 맞는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천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들은 디지털 혁명을 예비해 온 미국 컴퓨터 공학자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기린아들이었는데, 그들이 주도한 디지털 혁명은 결국 곧바로 능숙하게 컴퓨터를 활용한 수십억 대중을 통해서 완성되었다. 소수의 천재와 다수의 현자가 이룩한 위대한 정보혁명의 협업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지만, 발명이 필요를 낳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구인들은 거의 모두가 생활의 편리를 위해 다양한 문명의 이기를 갈구한다. 다만 어느 정도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계속 새로운 물건이나 도구를 원하기보단 이미 스스로 익숙해진 것들에서 자족하려는 성향 또한 크다. 젊은 층에 비해 중년층이나 노년층은 기발한 신제품이나 이색적 신문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현저하게 낮아진다. 그렇게 타성에 젖은 대중으로 하여금 신제품을 구매하여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을 이끄는 창의적 동력이 아닐 수 없다. 그 점에서 외계인 미도가 말하는 기발한 소수와 현명한 다수의 협업이란 바로 필요의 창출 과정이다. 예컨대 한평생 지게만 지고 살아온 농부들을 모아서 큰길을 닦고 수레를 밀고 끌게끔 하는….
송재윤(맥마스터 대학 역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