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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가격·수량 모두 통제된 한국의 노동시장

[김이석 칼럼] 가격·수량 모두 통제된 한국의 노동시장

기사승인 2024. 03. 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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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실장
논설심의실장
'2024 경제자유지수' 산정에서 우리나라의 종합점수는 평가 대상이 된 전체 184개국 가운데 14위로 비교적 합격 점수를 받았지만, 노동시장 항목에서는 87위로 낙제점을 받았다. 결국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는 가격(임금)이든 물량(노동시간)이든 자유롭게 결정할 수 없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 많고 경직적인 규제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우선 가격을 살펴보자. 최저임금의 적용을 업종별, 지역별로 보다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가 많았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노동단체들과 정치권, 특히 야권은 여기에 대해 부정적이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간병이나 돌봄 서비스에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고 이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요양병원에서 개인 간병인을 두면 평균적으로 월 370만원, 맞벌이 부부가 가사·육아 도우미를 두면 월 264만원이 드는데 이런 부담을 지고서는 그 가족은 아예 일을 할 수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한은의 지적에 많은 노동자들에게 공감하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우리나라의 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노조가 외국인 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에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저임금 외국인 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을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현대판 노예제'라고까지 말하지만 과연 그런지는 크게 의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로서는 최저임금이 한국인들에 비해 조금 낮더라도 일할 기회를 얻고자 하고 있다면, 이런 기회를 차단하는 것은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 논리를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는 '최저임금제'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위한 '착한' 제도라고 한 줌의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쉽지만 노동시간의 판매를 주택의 판매에 빗댄 비유를 듣고 나면 외국인의 인권을 위해서라는 주장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어떤 주택이든 2억원 이하로는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누가 가장 힘들어질까. 2억원이 못 되는 주택을 가진 서민들은 주택 구매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당장 그 집을 팔기 어려워지고 피해를 보게 된다. 시가 2억원이 넘는 주택의 소유자들은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주택 구매자들의 수요가 자신들에게 몰리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

노동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이 높아질수록, 미취업 미숙련 노동자들은 일감을 구하기 어렵게 된다. 이 경우에는 도우미로 일하고 싶은 외국인들이 그런 기회를 상실한다. 그래서 경제학 교과서는 '최저임금제'가 가격을 일정한 수준 이하로 내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 가격 이하에서 일할 의사가 있는 노동자들을 그들의 의사와는 달리 실업으로 내모는 '비자발적 실업'을 유발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시간은 어떤가. 일할 시간을 일정 시간 넘지 않게 규제할수록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될까? 필자가 식당 종업원들에게 직접 물어봤더니 대개는 근로시간 단축을 환영한다고 했다가 "줄어든 시간만큼 급여가 줄어들어도?"라고 되물으면 고개를 저었다(졸고 "병역, 성, 그리고 노동에 대한 자기결정권" 본지 2018.7.2.). 장시간 노동에 따른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은 아마 "내 건강은 내가 챙길 테니 일할 시간은 내가 결정하고 싶다"고 할 것이다.

노예제가 아니라면, 각자의 신체와 정신은 오로지 그 사람의 것이다.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 것인지는 '독립'된 개인의 결정에 맡긴다. 그런데도 노동의 사용에 대해 개인들에게 사회적 규제를 '강제'할 수 있는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은 결국 헌법과 관련되어 있기에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낙제점을 받은 경직적 노동시장을 가진 한국사회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헌법재판소는 최근 전원일치 의견으로 주52시간제를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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