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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재판!] ‘디넷’ 속 녹음파일 활용해 수사·기소한 검찰…대법원 “위법”

[오늘, 이 재판!] ‘디넷’ 속 녹음파일 활용해 수사·기소한 검찰…대법원 “위법”

기사승인 2024. 04. 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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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디넷' 탐색 중 피의자-지청 사무과장 녹음파일 발견
녹음파일 기초 증거수집…추가 영장 발부받아 재판 넘겨
대법 "무관정보 삭제·폐기 않고 탐색…2차 증거도 못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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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박성일 기자
검찰이 대검찰청 통합디지털증거관리시스템 '디넷(D-NET)'에 저장된 녹음파일에서 범죄혐의점을 찾아내 기소했다가 대법원에서 철퇴를 맞았다. 디넷에 저장된 민감한 정보를 적법한 압수수색 절차 없이 수사에 활용한 것이 확인된 것이어서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모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춘천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6일 밝혔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별건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녹음파일 등에 관해 탐색을 중단하고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고 평가할 수 없어 위법수증거에 해당한다"며 "이를 기초로 수집된 증거인 2차적 증거에 관해 위법한 압수절차와 인과관계가 희석 또는 단절됐다고 볼 수 없어 (마찬가지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검찰치정 사무과장으로 근무하던 강씨는 2018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청의 한 간부로부터 시장 측근 수사를 늦춰 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았다. 이에 강씨는 수십년간 알고 지낸 같은 청 수사사무관에게 사건 진행을 선거 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해 실제 지방선거가 끝나고 수사가 진행됐다.

이와 함께 강씨는 2018년 6월 시청 관계자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주요 수사 단서와 구속영장 청구 계획 등 수사기관 내부 비밀을 누설하기도 했다.

검찰은 강씨 사건과 별개인 강원도 원주 '영랑택지' 개발 비위 사건를 수사하면서 2018년 12월 A씨 휴대전화를 압수(제1 영장)한 뒤 이를 포렌식해 이미징 작업 한 파일을 디넷에 저장해 뒀다.

검찰은 A씨의 영장 기재 혐의사실을 탐색하던 중 우연히 강씨와 A씨 사이 통화 녹음파일과 문자메시지 내역 등을 발견했고, 이를 따로 정리해 CD에 복제한 다음 수사기록에 편철했다.

검찰은 이후 강씨 비위에 대한 수사를 이어갔다. 이듬해인 2019년 1월 디넷에 저장된 A씨 휴대전화 속 강씨 사건 관련 파일에 대해 제2 영장을 발부받았으나 집행하지는 않았고, 한 달 뒤인 2월 제3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끝에 강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 재판부는 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강씨 측은 위법한 방식으로 증거가 수집됐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강씨의 일부 법정진술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검찰이 녹음파일에 대해 제2 영장을 발부받고도 집행을 미룬 경위와 다시 제3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점을 미루어 의도적으로 영장주의의 취지를 회피하려고 시도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며 "절차를 따르지 않은 1차적 증거 수집과 2차적 증거 수집 사이 인과관계가 희석 또는 단절됐다고 보여 증거능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 역시 이러한 1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항소를 기각했으나 대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대법원은 우선 "수사기관이 수사와 관련있는 정보를 선별한 후 수사와 무관한 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않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다면 무관정보 부분에 대해 영장없이 취득한 것이어서 위법하고 사후에 법원으로부터 영장이 발부됐다거나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이를 증거 사용에 동의했다고 해서 그 위법성이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제2 영장을 집행하지 않은 채 약 2개월 동안 무관정보인 녹음파일 등을 탐색·복제·출력하면서 수사를 계속했다. (원래의 영랑택지 개발 사건에 대한) 무관정보를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강씨 수사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며 "제1 영장 집행 종료 후 무관정보를 삭제·폐기·반환하지 않고 탐색·복제·출력한 조치는 모두 위법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차적 증거인 관련자들의 법정진술 등은 녹음파일에 근거해 조사 대상자가 특정됐고 신문 과정에서도 녹음파일 내용을 전제로 답변이 이루어진 등 녹음파일이 없었다면 수집할 수 없는 증거들"이라며 "무관정보를 발견했는데도 무려 3개월 동안 위법한 수사를 계속 진행해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원칙을 위반한 정도가 상당히 중하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지난 대선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한 언론사 대표로부터 압수한 정보를 디넷에 저장했다는 의혹이 나온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목을 끈다. 대법원 관계자는 "영장집행과정에서 무관정보를 발견했을 때 취해야 할 수사기관의 조치, 삭제의무 등 수사기관의 적법한 압수·수색 요건을 엄격하게 요구해 온 기존의 대법원의 판례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라고 판결의 의의를 전했다.

한편 대검찰청은 이날 "검찰은 현재 확립된 대법원 판례에 따라 디넷에 보관한 전부이미지(유관·무관)는 증거의 무결성·동일성·진정성 등 증거능력 입증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강씨 사건을) 수사할 당시는 전부이미지, 선별이미지에 대한 등록 및 폐기 절차가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았으나 현재는 증거능력 입증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외적으로 전부이미지를 보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선별절차까지 종료된 이후부터는 접근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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