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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대법원의 현대차 손해배상 판결 유감

[김이석 칼럼] 대법원의 현대차 손해배상 판결 유감

기사승인 2023. 06. 1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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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실장
현대차가 전국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조원 4명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대법원은 지난 15일 불법파업에 참가한 노동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때 불법행위의 정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리고 원고인 현대차가 승소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이 판결은 얼핏 보면 가담 정도에 따른 '비례성'의 원칙을 지킨 훌륭한 판결인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한 일선 판사의 해석에 의하면, "앞으로는 기업이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노조원별로 파업 가담 정도를 증명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대법원이 책임의 정도를 입증할 책임을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부과한 셈이 된다. 그래서 이 판사에 따르면, "기업이 일일이 입증을 못 해 파업 가담 노조원 상당수가 사실상 면책될 가능성이 있다."

이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이런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을 옹호했다. 그 관계자는 지난 2008년 기업이 임원진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대법원은 대표·상임감사 40%, 상무이사 20%, 이사 10% 등 직급에 따라 책임 비율을 차등 적용한 바 있다고 예시하면서, "공동 불법행위에 대해 예외적으로 (행위자별로) 책임 비율을 달리할 수 있다는 기존 판례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판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차등 적용하는 것과 피해자가 입증 책임을 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대법원이 직급이 높을수록 더 큰 비율의 책임을 지도록 책임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것까지는 누구에게나 수긍시킬 수 있겠지만, 상무이사의 책임은 이사의 2배이고 또 대표와 상임감사의 책임은 상무이사의 2배인지 대법원이 입증할 수 있을까?

이는 피해를 봤는데도 피해가 구제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법적 정의감에 부합하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사실 노조와 개별 노조원의 책임 비율을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들 사이에서 정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하는 것이 소위 '정보획득 비용'을 고려할 때 더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이다. 

더구나 무엇보다 이번 판례가 ''공동 불법행위에 대해선 참가자들이 연대 책임을 진다'는 민법의 대원칙과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규칙들이 진화해 가는데 민법이나 상법은 그 가운데 살아남아서 법(law)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법과 입법(legislation)을 구별할 때 민법은 입법이 아닌 법인 것이다. 

대법원에 맡겨진 기능은 이런 법에 역행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회에서 진화해 온 규칙들을 발견해서 적용해서 판결을 내리고 그런 판결들이 모여 '민법' 혹은 '상법'과 같은 규범이 되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법(law)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법원이다. 특히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그런 기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국회가 이런 '법'을 역행하는 '입법'을 할 때 그에 대한 견제가 바로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법원의 판결일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판사 출신 변호사의 의견처럼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입법이 논의 중이고, 중요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에서 법을 만드는 효과가 있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 변호사의 의견처럼 이게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피해자인 기업에 과도한 입증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불법파업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낼 것이다. 그 결과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이번 판결에 대해서도 적용될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이 여기저기서 등장하자 법원행정처는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면서 비판을 자제하라고 밝혔다. 필자는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난 독립성을 지키는 법원이 국회의 입법에 대해서도 견제 기능을 잘 발휘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기에 결코 대법원의 독립성을 훼손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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