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혈연의 그늘] 친족 성폭력 매년 수백건…“실제는 더 많다”

[혈연의 그늘] 친족 성폭력 매년 수백건…“실제는 더 많다”

기사승인 2024. 04. 08. 07:3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친족 성폭력 매년 수백건…정확한 국가 통계 없어
2023년 친족 성폭력 상담 72% 만13세 미만
법조계 "가족 공동체로 묶여 신고·처벌 망설여"
basic_2022
친족 성폭력 범죄 유형별 발생 건수/아시아투데이 디자인팀
#이혼 후 친딸과 떨어져 살던 A씨는 2021년 1월 '대학생 됐으니 밥 한번 먹자'며 딸과 함께 자신의 집을 방문했다. A씨는 이 자리에서 딸의 머리채를 잡아 벽에 밀치고 속옷을 벗기는 등 강제추행을 했고, 그해 11월 친딸은 "아버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A씨의 딸이 간직했던 녹음 파일에는 "아빠, 아빠 딸이잖아, 아빠 딸이니까"라며 애원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올해 2월 A씨에게는 징역 5년이 확정됐다.

#성범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출소한 60대 남성 B씨는 2020년 출소 당일 거실에서 TV를 보던 딸을 성폭행했다. 같이 출소한 둘째 삼촌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조카에게 성범죄를 저질렀고, 막내 삼촌은 5년 전부터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딸이자 조카인 피해자는 고작 13살에 불과했고, 친할머니마저 손녀의 성범죄 피해를 외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범죄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면수심' 범죄로 꼽히는 친족 성폭력이 매년 일정 수준 이상 발생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 상당수가 만 13세 이하로, 알려지지 않은 범죄 행각은 더욱 많은 실정이다. 범죄가 드러나도 '혈연'으로 이어진 탓에 가해자를 처벌하기까지는 수많은 제약이 뒤따르는 만큼 전문가들은 범죄 특수성에 맞는 새로운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8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친족 성폭력 범죄에 관한 정확한 국가 통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 집계되고 있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친족에 의한 강간과 강제추행을 저지른 인원은 2020년 418명, 2021년 443명, 2022년 393명으로 나타났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신규상담자 557명 가운데 친족 성폭력 피해자는 61명으로 전체의 11% 수준을 차지했다. 성폭력 피해 상담 10건 중 1건이 친족에 의한 성폭력인 셈이다. 특히 지난해 친족 성폭력으로 상담한 61명 중 44명은 13세 이하 유·아동인 것으로 확인됐다. 비율로 따지면 70%를 웃돈다.

친족 간 성범죄는 대표적인 '암수범죄(暗數犯罪: 범죄가 발생했으나 수사기관에 의해 인지되지 않았거나 검거되지 못한 범죄)'로 실제 발생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가까운 친족이 가해자가 되는 만큼 피해자나 가족들이 범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가족은 일대일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피해 발생 이후 피해자들이 고려해야 할 판단 요소들이 복잡하게 결합돼 있어 곧바로 형사고발을 선택하는 데에는 대단히 많은 제약이 있다"며 "실제로 그러한 절차가 진행됐을 때 가족이 원만하게 유지되지 못하고 와해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가해자를 처벌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쉽지 않다"고 전했다.

나아가 가족이 '경제공동체'라는 점도 피해자들의 용기를 꺾는 주요 이유로 꼽힌다. 성범죄 분야 전문의 한 변호사는 "예를 들어 친아빠를 고소해서 실형에 처해졌을 때 가족이 경제활동 없이 유지가 가능한지까지 실제 피해자들은 판단해야 한다"며 "범죄 피해를 당해 신고를 하더라고 이후 '혈연의 그늘'에 묶여 선처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설명했다.

미성년자 피해자의 경우 부모가 가해자인 특수성을 고려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피해자학회장을 지낸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친족 성폭력 관련 연구를 보면 대부분의 가해자가 가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가 일반적인 가정보다도 더 확고하다"며 "피해자가 가해자에 종속되는 소위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상태가 되면서 쉽게 가정의 벽을 뚫고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